이 이글루는... 인사

한국에서 태어나 독일, 코스타리카, 멕시코를 거쳐 지금은 미국에서
남편과 아들과 고양이 두 마리와 동거하며
프리랜서로 한영/영한 번역 일을 하며
우울증, 제2형 당뇨병, 갑상선기능저하증, 화농성 한선염을 앓고 있으며
저탄수화물 고지방식을 먹고
뜨개질/코바느질을 취미로 하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모시는
한 여자 사람의 일기장입니다.

Ren Fest 가족

모처럼 르네상스 페스티벌에 갔다. 성인 입장권은 23불이었는데 푸드뱅크에 캔 5개 기부하면 1+1이라 10개 가져가서 시부모님과 함께 갔다.

마지막으로 간 게 언제인진 기억이 안 나는데 사람도 많고 비 온지 얼마 안 돼서 땅바닥이 진흙투성이었던 기억이 난다. 이번엔 문을 열 때쯤 가니까 주차도 비교적 입구에서 가까운 데 하고 사람도 그리 많지 않고 한 일주일 해가 쨍쨍했는지라 땅도 굳은 편이었다.

아들내미 유모차에 태우고 돌아다녔는데, 땅이 울퉁불퉁하고 나무 뿌리에 자주 걸려서 딱히 평탄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초반에는 얌전히 잘 있어주었다.

맹금류 보호 단체에서 매랑 작은 부엉이랑 솔개 등을 보여주고 설명하는 프로그램을 잠깐 봤는데, 처음엔 새가 조련사의 손에 앉아서 날개 펼치는 모습에 흥미를 보였지만 이내 설명이 길게 이어지자 지루했는지 칭얼대서 세 번째 새까지만 보고 다시 돌아다녔다.



나무를 깎아 만든 무기와 방패 장난감 가게에서 아들내미에게 도끼를 들려 보았다. 아직은 저런 거 들고 놀기엔 너무 어리지.

각종 의상을 입고 펼치는 불쇼도 있고 합창이나 연주 등 여러 공연이 있었지만 아들내미 유모차 미느라 한 곳에 앉아서 진득히 구경은 못하고 그냥 돌아다니면서 눈으로만 감상했다. 먹거리 파는 매점 상인들도 중세시대 사람들처럼 입고 말투도 옛날 말투를 쓰곤 했다. 남편이 맥주를 사면서 혹시 생수도 있냐고 물으니 “No, we only serve pollutants here, my lord”라고 대답하더란다. 옆집에서 생수를 사마셨다.

정오가 지나고 배가 고파져서 일단 시부모님은 어느 그릇 가게 주인이 추천한 (여기서 유일하게 직접 만드는 음식이라는) 크레이프집을 찾아 줄 서셨다. 우리는 지붕 아래 벤치가 있는 곳에 유모차를 대고 자리를 잡았다. 남편이 우리가 먹을 훈제 칠면조다리를 사러 다른 줄에 섰다. 나는 유모차와 함께 벤치에서 기다리는데, 옆 벤치에 13개월 쌍둥이 남매를 데려온 아빠가 앉았다. 두 아기가 나란히 쌍유모차에 타고 있었는데, 여자아이는 잘 웃더라. 남자아이는 샌드위치 먹기에 정신 없고.

우리 아들내미는 시부모님이 크레이프를 조금 주셨는데 (시어머니는 딸기 컴포트와 바닐라 아이스크림, 시아버지는 햄과 계란) 조금만 받아먹었다. 남편이 돌아와서 우리가 칠면조 다리 하나씩 뜯는 동안 시부모님이 봐주셨는데, 칠면조 고기도 조금 떼어 줘봤지만 잘 안 먹었다.

마침 근처에서 마상 시합이 시작하고 있었는데, 액션이 시작되기 전에 이런저런 말이 너무 길게 이어져서 우린 구경을 포기하고 계속 돌아다녔다. 아들내미 낮잠 잘 시간인데 최근에 유모차에서 낮잠을 잔 적이 없어서 걱정했다. 내가 아기띠로 매봤지만 너무 더워서 답답해하는 것 같았다. 결국 유모차에서 등부분을 젖혀서 태우고 멈추지 않고 밀어주니까 금세 곯아떨어졌다.

아들내미가 잠에서 깨고 난 뒤에는 잠깐 시아버지가 어깨에 목마를 태워주셨다. 비눗방울을 뿌리는 가게에 가니까 아들내미가 좋아했다.



마지막으로는 petting zoo에 갔다. 하얀 망아지에게 뿔을 씌워놓고는 유니콘이라고 해서 어린 여자아이들이 몰려있더라. 우린 그냥 양이랑 염소만 좀 만져보고 왔다.





날이 많이 더워서 쾌적하진 않았지만 뭐 그래도 나름 즐거운 시간이었다. 아들내미가 좀 더 커서 이런 걸 제대로 즐길 수 있는 날이 기대가 된다.

페스티벌장을 나오고 이케아에 가서 에어콘 쐬며 좀 걷다가 레드 랍스타에 가서 무한 새우를 먹었다. 전에는 레드 랍스타 가면 아들내미가 새우 거들떠도 안 보고 마구 떼를 써서 우리가 한 사람은 달래고 다른 사람이 바삐 먹으며 교대했었는데 이번에는 얌전히 하이체어에 앉아서 새우랑 시어머니의 연어를 잘 받아먹었다.




무럭무럭 자란다. 내년에는 올해보다 더 즐겼으면 좋겠다.

아 짜증 잡담

어김없이 달손님이 오시면 감정의 기복이 심해진다.
변덕이 심한 클라이언트와
칠칠치 못한 일차 번역자와
영어를 잘 못하는 새 PM 때문에
그냥 넘어갔어도 될 일을 내가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들고 있다.

Tammy Duckworth 기억하고싶은사람들

어쩌다 이런 기사(?)를 읽게 되었다. 그리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

백인 아버지와 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한때 생활고를 겪기도 하고 군인이 되어 대학교에서 여군 비하 발언한 남학생에게 발끈하여 사과 받고 결국 결혼했고 박사 공부도 하다가 이라크전에서 헬기 조종하다 폭격 당해 두 다리를 잃고 오른팔에도 부상을 입었다. 그런데 그 뒤로도 희망을 잃지 않고 군인의 권리 보호를 위해 힘껏 애쓰는 것을 보고 정치에 뛰어들라는 조언을 받아 그렇게 해서 결국 일리노이를 대표하는 의원이 되었다.
군을 그만두면서 아이를 가지려 애썼지만 잘 안 돼서 입양을 알아보던 중 다른 이의 권유로 다른 의사에게 가서 결국 체외수정으로 임신에 성공했는데, 전에 보던 의사가 종교적인 이유로 그런 것이 가능하다는 것조차 알려주지 않았었다는 데서 어이 상실. 둘째는 50살에 낳았는데 50대 출산은 geriatric으로 분류된다는 데서 또 기함. 그리고 처음으로 상원의원 활동 중에 출산하였으며 상원에 돌 안 된 아기의 출입을 허하도록 규정을 바꾸어 일하는 틈틈이 젖도 먹인다고 하여 더욱 감탄.

어쩌면 이렇게 열심히 사는 사람이 다 있을까!

순대를 잘 먹는다 아들내미

아들내미는 한동안 다른 음식은 다 거부하고 치즈만 먹었다. 치즈도 처음엔 아무 치즈나 다 먹다가 점점 딱딱한 moon cheese만 먹더라. 근데 이거 비싼데. 그래서 인터넷으로 집에서 만드는 법 보고 세일하는 치즈 블록을 사다 구워봤는데 오븐에 따라 필요 온도가 다르다나 해서 일단은 그냥 녹아서 납작하게 됐다. 그래도 바삭하고 맛있어서 애나 어른이나 다 집어먹지만. 다음엔 더 낮은 온도에서 해봐야지.

동네에 새로 문 연 하와이 형제(실제 사업주는 오레곤 출신 형제지만)라는 식당이 있는데, 저탄수 옵션으로 밥과 마카로니 샐러드 대신 상추를 주거나 돈 더 내면 구운 야채를 준다. 처음엔 거기서 풀드 포크와 참깨마늘 닭고기를 테이크아웃으로 해서 먹었는데, 소금만 뿌린 풀드포크는 심심했지만 참깨마늘 소스에 비벼먹으니 맛있었다. 소스가 약간 단 맛이 있어서 진정한 저탄수는 아닌 것 같지만 가끔 먹는 건 괜찮겠지.

수요일 저녁 때 시부모님과 함께 여길 갔다. 그리고... 집에서는 숟가락으로 음식 떠먹여주는 것을 거부하던 아들내미가 여기서는 젓가락으로 고기 입에 넣어주니까 받아먹더라! 나는 그저 치즈가 아닌 음식을 먹었다는 데 감동했다.



다음날 집에서 젓가락으로 밥 먹이려 하니까 안 통하더라. 아쉬웠다.

아, 블루베리도 먹긴 먹는다. 아주 욕심이 많아서 입에도 넣고 양손에 쥐고 먹는다.



이번에 산 블루베리는 신 것도 제법 있어서 걱정했는데 적어도 내가 볼 때는 하나도 안 뱉고 제 입으로 들어간 건 다 먹었다.

다운타운에 수제 아이스크림 가게가 있는데, 산책 나가면 시부모님이 종종 들리신다. 유모차 끌고 산책 나갔다가 시부모님이 아이스크림을 드셨는데, 늘 숟가락을 갖다대면 고개를 돌리던 아들내미가 이번엔 넙죽넙죽 잘 받아먹었다. 그러니까 단 거에 맛을 들리면 숟가락도 거부하지 않는단 얘기렸다.

시어머니는 가끔 아침 식사 대용으로 요거트를 드시는데, 오늘은 거의 다 드셨을 무렵에 아들내미가 관심을 보여 한 입 주니 먹더랜다. 조금 남은 거 다 긁어서 아들내미 주셨는데, 아들내미는 더 먹고 싶어서 투정을 했다. 일단 두 분이 현관에서 아들내미 안고 그네를 타시는 동안 (아들내미가 떼를 쓰면 밖으로 데리고 나가거나 해서 분위기를 전환하는 게 진정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 나는 원래 내가 먹는 플레인 요거트에 과일 퓨레 파우치를 섞어서 볼에 담아 숟가락과 함께 가지고 나갔다. 시어머니 무릎에 앉아 그네를 타면서 아들내미는 숟가락으로 떠주는 요거트를 잘 받아 먹었다. 그런데 자세가 불편해서 집 안으로 데려와 제 의자에 앉히고 턱받이를 매주고 먹이려니까 이젠 또 짜증을 내면서 안 먹는 거다. ...에휴.

한편, 오늘 저녁은 모처럼 순대였다. 종일 재료 다지고 속을 만든 후 키친에이드 스탠드믹서로 돼지소장을 채워 만들었다. 브랏부어스트는 간 고기에 이미 가루로 된 향신료만 섞으면 되는데 순대는 속재료를 일일이 다지려니 힘들긴 하다.




아들내미는 노트북으로 TV 유치원을 보게 하면서 나는 기계를 돌려 속을 채웠다. 아들내미가 짜증을 낼 무렵에 남편이 퇴근하여 육아 탱커 바톤 터치를 했다.

채우고 나서는 얼른 삶고 먹느라 사진을 안 찍었다. 예정일이 삼 주도 안 남은 부부를 초대했는데, 손님이 있어서 잘 보이려고 한 건지 몰라도 아들내미는 의외로 저녁 때 얌전하게 잘 지냈다. 처음엔 난 순대를 줄 생각이 없었고 지금까지처럼 치즈를 줄 생각이었는데, 상에 놓인 순대를 보고 달라는 것처럼 손짓하길래 남편이 순대를 한 조각 풀어서 속을 젓가락으로 주니까 잘 받아먹는 거였다. 상추에 오소리감투 양배추 볶음과 순대를 싸서 김치랑 쌈장과 싸먹었는데, 내가 손에 상추를 든 걸 보고 또 낑낑대길래 상추도 작은 조각을 줬더니 먹더라! 그래서 오늘 저녁은 순대로 배불리 먹고 후식으로 수박도 먹었다. 상추는 가끔 뱉긴 했지만.

아무리 우리 아들내미지만 순대를 이렇게 잘 먹을줄은 몰랐다. 손이 많이 가긴 하지만 앞으로 더 자주 만들어야겠는걸?

손님한테 내가 아기 방에서 출산과 육아 관련 우리 경험을 열심히 설명하고 있는 동안, 남편은 거실에서 아들내미와 함께 의자에 앉아 있었는데, 마침 여행 갔을 때 샀던 해바라기씨 봉지가 의자 옆의 서랍장 위에 있었다. 여행 갔을 때 아들내미한테 해바라기씨도 줘서 먹여본 적이 있긴 했다.

아들내미가 이 봉지를 발견하고는 집어서 아빠한테 주더란다. 그래서 남편이 한 알씩 꺼내서 자기 손바닥에 놓자 아들내미는 그걸 집어서 입으로 가져가 먹더래. 한 스무 번쯤 그러다 남편이 봉지를 닫고 다시 서랍장 위에 놓았더니, 아들내미가 다시 그걸 집어들고 아빠 무릎에 놓고는 아빠 손을 잡아 봉지로 가져가더래. 짜증을 부리거나 보채지 않고 침착하게. 남편은 감탄해서 다시 봉지를 열고 해바라기씨를 줬다고.

직접 보지 못한 게 아쉽지만 앞으로도 또 비슷한 기회가 있겠지. 오늘은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오늘 본 손님도 무사히 순산하고, 육아의 여정을 잘 시작하기를.




1 2 3 4 5 6 7 8 9 10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