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n Fest 아들내미



날씨도 많이 선선해져서 르네상스 페스티벌에 갔다왔다. 마지막으로 갔던 게 시아버지 돌아가시기 전이라 참 마음이 그렇네. 그동안 코로나 때문에 갈 생각도 안 했다. 아예 열리지 않았는지는 모르겠다.

쬐끄만 애기 때 데리고 가서 유모차로 밀고 다니거나 누군가가 안고 다녔었는데 이제는 훌쩍 커서 유니콘으로 분장한 말도 타고 낙타도 타고 목검과 방패 사달라고 조르고... 아무튼 우리한테야 뭐 늘 다 똑같은 렌페스트인데 즐거워하는 아들내미 보는 게 즐거웠다.



목검은 시아버지가 만들어두신 게 있기 때문에 안 사주고 방패는 아들내미가 유니콘으로 골랐다. 색칠된 건 훨씬 비싸서 내가 색칠 안 된 걸 사서 직접 색칠하자고 하니까 좋다고... ㅎㅎ 이러면 애 놀릴 거리도 하나 더 생기는 셈이니까. 물감 값이 가격 차이를 상쇄하려나...

전에는 비온 지 얼마 안 됐을 때 가서 땅이 진흙바닥이었는데
이번에는 하도 건조해서 풀썩풀썩 흙먼지가 날리더라.
시어머니는 질척거리는 것보단 건조한 게 낫다고 하시는데 남편은 기침 많이 해서 흙먼지 날리는 게 더 싫다고. 난 둘 다 싫은데...

유니콘으로 분장한 말 타려고 줄 서서 기다리는 동안 남편이 이거 진짜 유니콘이야~ 하니까 아들내미는 그냥 말에게 unicorn costume 입힌 거 다 안다고, unicorns aren't real! 이러더라.

여기 안에서 뭔가를 먹으려면 값은 바가지도 줄은 엄청 긴 걸 알기 때문에 아침에 나서기 전에 베이컨과 스크램블드에그로 든든히 아침 식사를 했고, 물통 두 개를 채워서 내 Bag of Holding에 담았고, 퀘스트 바도 샀다. 그래서 거의 한두 시간 간격으로 아들내미가 배고프다 할 때마다 퀘스트 바 한 개씩 줬다.

대충 다 둘러보고 나와서는 바베큐집에 가서 샘플러 플래터로 배불리 먹고 (나는 삼겹살 burnt ends가 제일 맛있었다! 이거 집에서도 할 수 있나...) 코스트코에 갔다가 집에 왔다.

다들 녹초가 되었지만 그래도 즐거웠다. 시아버지가 계셨으면 정말 좋았을 텐데.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지.

엄마는 정말 날 모르는구나... 가족

요즘 들어 내가 자폐 스펙트럼에 있는 거라면... 하면서 옛날을 돌아보곤 한다.
그냥 타문화에 적응 못 해서 어설펐던 거라고 여겼던 게 사실은 자폐라서였나? 주로 이런 생각들.

타인과 교감을 잘 못 한다는 것.
그냥 얘기가 안 통하는 것.

그동안은 공통된 관심사가 없어서 그런 거려니 생각했었다.

어디에서나 미움받고, 배척당하고, 따돌림당하고, 이용당하다 버려지고.

나는 그게 그저 타지에서 생활한 것의 낙인이라고만 생각했다.

부모님과 화상 통화할 때 혹시 자폐에 관해 들어봤냐고 여쭈었는데 전혀 엉뚱한 한탄만 잔뜩 들었다.

그 옛날 나는 광장동 살면서 막연히 나는 독일어를 하니까 대원외고 가야지 생각했다가
나중에 다른 동네로 이사하고
거기다 고1 끝무렵에 어차피 다시 한국을 떠나게 되면서
대원외고 지원을 포기하고 그냥 가까운 여고에 가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자유롭게 하면서 비로소 행복한 몇 달을 보내다가 그렇게 한국을 떠난 건데
그리고 1년은 코스타리카에서, 1년 반은 멕시코에서 미국 시스템 학교를 다니면서 힘들게 적응해 결국 장학금 주는 대학에 가고 거기서 남편을 만나 지금에 이르게 된 것이다.

그런데 엄마는 내가 그때 대원외고에 갔어야 했다고,
그때 한국을 떠날 게 아니라 나를 집중케어해서 더 좋은 대학교 보냈어야 한다고 하시더라.

그랬으면 내가 지금처럼 집에만 틀어박혀서 좁은 인간 관계를 유지하며 미미하게 살지 않고 수백 수천 수만 명의 사람들과 어울리며 뭔가 큰일을 할 인재가 되었을 거라는 식으로 말씀하시는데...

어쩜 이렇게 나를 모르지?
설령 내가 더 좋은 학교를 나왔어도 내 기본적인 성향은 바뀌지 않았을 텐데. 나 아파트 11층에 살면서 다른 사람과 엘리베이터 같이 타는 게 싫어서 일부러 계단 사용할 정도로 사람을 무서워하던 사람이었다고.

거기다 나는 처음으로 반 아이들에게 미움받지 않고 행복한 시간이었어서 그 동네 여고에서의 몇 개월이 그나마 한국에 대해 갖고 있는 좋은 인상이다. 뭐, 억지로 대원외고든 다른 특목고든 갔었어도 좋은 친구들을 만났을 수도 있었겠지만, 그때의 나는 거리도 멀고 등록금도 더 비싼 곳에 다니면서 고생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공부를 잘하거나 좋아한 게 아니라 그저 내가 관심있는 걸 파다 보니 그게 시험 성적 잘 나오는 데 도움이 된 것일 뿐, 지금 보니 나는 공부하는 사람도 아니더라.

그리고 대학도. 나한테는 정말 좋은 곳이었다. 좋은 교수님들을 보고 배워서 내 신앙도 더 성숙해졌고 무엇보다 남편을 만났잖아.

진짜 다른 거 다 필요 없고 남편 하나만으로도 그 대학 간 게 나한테는 최고의 수였다.

아무튼. 그래서 지금 나는 사람들과 접촉할 일 없으면서 내가 즐겁고 잘하는 일을 하고, 나랑 정말 잘 맞는 남편과 살면서 소수의 친구들과 삶과 신앙을 나누며 아들내미를 키우고 있다. 물론 건강이라든가 뭐 문제가 아주 없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매우 분에 넘치게 잘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엄마는 여전히 내가 안타깝고 아깝대. 나를 어쩜 이렇게 모르지? 내 엄마라는 사람이.

나는 내 아들에게 저런 엄마가 되지 않기를.


폰 교체. 생활


아이폰 10을 몇 년째 쓰고 있었는데 요즘 많이 느려진 것 같고 특히 용량이 너무 부족해서 결국 질렀다. 트레이드인하니까 그리 비싸지도 않고 해서.

케이스도 그동안 Otterbox에 충성했었는데 이번에는 스피겐으로 바꿔봤다. 한국 거라니까 더 신뢰(?)도 가고 친근감도 들고.

이전 폰 PC에 백업하고 새 폰을 켰는데, 그냥 블루투스로 대이터 이전하는 게 돼서 그걸 해봤더니 새 폰은 다 된 것처럼 구는데 옛날 폰은 1분 남았다면서 계속 끌어서 결국 취소하고 다시 PC 백업본으로 복구.

남편도 같이 했는데 나는 보라색을 골라서 그런지 금방 왔고 검은색을 고른 남편 건 아직 3~4주는 기다려야 한다.

폰은 어제 도착했는데 케이스가 오늘 도착이라 오늘에야 옮겼다. 옛날 폰 리셋하고 케이스에서 꺼내니까 로즈골드인가? 분홍색 비슷한 색인데 그동안 검은 케이스에 가려서 까맣게 잊고 있었네.

새 폰은 애플 로고 부분이 보여서 보라색이 조금이나마 보인다.

이렇게 계속 AT&T에 묶여 있는다...

토요일 아침부터 가슴이 철렁 생활

일곱 시 조금 넘어서 전화가 와서 진동 때문에 깼다. 로컬 번호이긴 하지만 검색해 보니 어딘지도 안 떠서 그냥 보이스메일로 넘어가게 두었다가 정말로 음성메시지를 남겼길래 받았다.

어제 갔던 그로서리 스토어에서 이 번호와 연관된 지갑을 가지고 있으니 커스터머 서비스로 와서 가져가라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내 지갑은 내 손가방에 잘 있는데 무슨 고린가 했다. 혹시나 싶어 대충 가운을 걸치고 아래에 내려가 손가방을 보니... 없네. 심장이 크게 뛰었다. 일단 다시 안방으로 돌아와 옷을 입었다. 남편도 주섬주섬 일어나 나갈 준비를 했다.

어제, 아들내미 얼집에 데려다 주고 바로 가장 가까운 마트에 가서 우유랑 바나나를 사왔댔었다. 그런 볼일은 보통 얼집에서 픽업하면서 나가는데 어제는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그랬었다. 그래놓고 아들내미 우유를 빼먹어서 또 얼집 끝나고 픽업하면서 다시 갔었다. 아무튼, 아침에 나는 그 마트 갔다가 집에 오면서 지갑이 가방 안에 잘 있겠거니 생각했고, 집에 와서는 손가방을 코트걸이에 걸어 두고 다시는 들여다 보지 않아서 지갑이 없는 것도 전혀 몰랐다. 오후에는 남편이 운전해서 나는 내 폰만 들고 나가서.
일단 뱅킹 앱에 들어가보니 수상한 charge는 없었다. 원래도 카드 긁을 때마다 바로 푸시 알림이 뜨지만 혹시나.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카드 다 재발급 받아야 하나.

이렇게 머릿속에 오만 가지 생각이 들끓는 상태로 가니까 내 얼굴을 보고 직원이 지갑을 건네줬다. 현금음 십 몇 불 있었는데 그것까지 그대로. 누군가 매우 정직하게 주차장에 떨어져 있던 비 맞은 지갑을 주워서 그대로 고객센터에 갖다준 모양이다. 처음에는 그냥 누가 찾아오길 기다렸다가 이 마트의 로열티 회원카드로 전화번호 확인하는 기능이 최근에 추가되어서 오늘 아침에 해봤다고.

몇 주 전에 우편으로 이 마트에서 백 불짜리 기프트카드가 날라와서 뭐지 싶었다가 검색해 보고 아들내미 생일 파티 때 이것저것 많이 샀는데 그때 마침 행사 기간이었고 우리가 산 것들 중에 거기 응모 자격이 되는 게 있어서 회원권 덕분에 자동으로 응모되었고 거기에 또 운 좋게 당첨이 된 것이었다.

개인정보 유출에 민감해지는 시대라 처음에는 조금 놀랐는데, 이런 일이 있고 보니까 확 이 마트에 대한 충성도가 올라간다. 물론, 지갑을 주워준,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이야말로 은인이고.

폰을 교체하기로 해서 폰 안 잃어버리는 데만 신경 썼더니 이런 일이... 지갑의 내용물은 비교적 쉽게 replace할 수 있지만 폰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니까...

결국 집에 와서 들고 다니는 손가방을 조금 더 큰 것으로 교체했다. 작은 것에 대충 구겨넣으니까 이렇게 지갑이 떨어져도 모른 것 아니겠어.

십년 감수했다.

타겟에서 호랑이 연고를 파네. 잡담

기침은 많이 나아졌지만 손목이 너무 시큰거려서 여전히 작업 속도가 더디다,

결국 아이 운동화를 사러(여름엔 샌들 신고 다녔고 그 전에는 12호 운동화를 신었다) 타겟에 간 김에 약국 코너에서 손목에 도움될 만한 게 있나 보는데 파스 근처에 호랑이 연고도 있더라. 우와. 언제부터 생겼지?
키네틱 테이프와 생리통용 발열패드를 사왔다. 발열패드를 키네틱 테이프로 손목에 감았는데, 별로 뜨겁지 않아서 그런가 별 효과가 없다. 오늘은 맨소래담 바르고 키네틱 테이프로 감으니까 좀 낫다. 손목 브레이스를 하면 도움은 되지만 타자 치는 게 불편해서.

아이는 여러 운동화를 신어보고 신발끈이 있는 운동화를 골랐다. 사이즈는 2호. (애들 사이즈는 13호까지 있는 것 같고 그 다음 일반 사이즈를 시작한 듯?) 금방 크는구나...
신발끈 매는 것 때문에 남편이 주저했지만 내가 전에 아마존에서 주문해서 내 운동화에 쓰는 신발끈 버클 꼼수 키트가 아직 있다고 설득했다. 3개들이 팩이라서 아직 두 개가 남았거든.

집에 와서 신발끈 풀고 키트 하나를 열어서 새로 매줬다. 버클의 버튼을 눌러서 신발끈 느슨하게 하고 조이는 법을 가르쳐 주니까 곧잘 한다.

시어머니는 신발끈 매는 걸 직접 배우게 해야 한다고 하시지만 나는 지금 굳이 그럴 필요 없다고 생각한다. 어른인 나도 운동화 신으면 맨날 신발끈 풀려서 거추장스러워 이 꼼수 키트를 사용하는데, 어린애가 맨날 신발끈 걱정을 해야겠냐고. 물론 끈 매고 그러는 게 소근육 발달에 좋다는 건 알지만 그건 꼭 신발끈이 아니라도 할 수 있고, 실제로 끈 가지고 그런 거 어린이집에서도 하고 집에서도 하거든.

뭐 아무튼. 호랑이 연고를 발견해서 반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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