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t make this up! 이거 실화냐? 잡담

동생 결혼식 때문에 한국에 가는 게 이제 3주도 안 남은 시점.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남편이 가는 걸 보류하자는 뜻을 내비쳤다.
나는 서울은 괜찮을 거라고 생각하며 가자고 했지만
혹시나 하는 생각에 역시 가지 말까 하는 마음이 자꾸 든다.

그런데... 신천지?
지금 살아있는 네 분의 고모들 중에 두 분이 이단에 빠졌는데, 둘 다 신천지 아니던가?
동생에게 확인하니 한 분은 확실하게 신천지래. 남편이 여기서 seriously?
...그럼 그 고모 결혼식에 오시냐고 하니까 아마도?
그래서 내가 그 고모 오시면 우린 안 간다고 했다.
그러자 동생은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하다가
아버지랑 의논한 모양이고, 아버지는 신천지가 확실하면 오지 말라고 하시겠다고 하셨다고.
그런데 큰고모가 그러는데 신천지 떠난지 오래라고.
...그걸 믿을 수가...

지금은 가지 않는 쪽으로 마음이 기운다...
동생에게는 미안하지만...


Bye-bye, Papa! 기억하고싶은사람들

내가 시아버지를 처음 만난 건 대학교 다니던 시절, 남편과 연애를 시작한지 얼마 안 됐을 때였다. 꽤 긴장했었다. 그때 마침 학교에서 무슨 국제 교류 행사를 해서 유학생들이 각자 자기 나라 음식을 만들어서 시식회를 했던 것 같다. 그때 나는 J 언니와 함께 김밥을 잔뜩 만들어서 한복을 입고 나눠주고 있었다. 교포 친구인 EK가 시부모님을 먼저 만났는데, 그분들이 자기가 아들의 여친인가 하시니까 no, I’m the other Asian이라고 했다던가.

아무튼,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결국에는 그분들을 뵙게 되었고, 나는 시아버지와 남편이 너무 닮고 행동거지가 비슷해서 약간 소름이 돋았다.

그 뒤로 휴일이면 남편과 같이 아이오와에 올라가고, 그러다 시부모님 와계시면 같이 묵기도 하고 그러면서 홈메이드 아이스크림도 만들고, 시아버지의 목공예품도 보고, 우리가 결혼까지 생각하는 사이로 발전하면서는 나도 장신구함을 만들어주시고, 뭐 그렇게 서로를 알아가면서, 나는 시아버지가 매우 보수적인 부분이 강하긴 하지만 존경할 점이 많은 분이시라고 느꼈다.

일단 시어머니와의 금실이 매우 좋으셨다. 서로를 한없이 비방하고 빈정대고 원망과 짜증으로 대하기 일쑤인 내 부모님과는 다르게, 서로를 위하고 배려하고 존중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남편이 아버지를 보고 배웠구나 느낄 수 있었고, 아들내미가 태어날 즈음엔 꼭 아이도 제 아버지 보고 배우길 희망했다.

나나 남편이나 시어머니는 모두 내성적인 성격이라 낯도 많이 가리고 다른 사람을 대하는 게 소극적인데, 이 분은 매우 외향적이셨다. 그래서 같이 외출하면 이 분이 지나가는 사람이나 가게 직원 등에게 하도 말을 거셔서 종종 기다리곤 해야 했다. 그게 꼭 시시한 잡담이 아니라 대체로 작은 상황 속에서도 예수님에 대해 상기시키는 내용이라 감탄한 적이 많았다. 그냥 단순하게 보통 사람이라면 행운이라고 말할 상황에서 꼭 축복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처럼 은근한 것도 있고, 직접적으로 예수님을 언급할 때도 있었고.

물론, 특유의 재치와 유머로 말장난도 많이 하셨다. 특히 점원이 뭘 도와드릴까요 하며 다가오면 사람을 찾고 있다고, (카트에 실은 물건을 가리키며) 이거 다 돈 내줄 사람을 찾는다고 한다거나, 이번에 병원에서 간호사에게 했던 것처럼 백만 불이 필요하다고 한다거나, 뭐 그런.

남편도 꽤 말장난을 많이 하는 편인데, 그게 시아버지랑 불이 붙으면 꽤 장관이었다. 그래서 나는 나중에 아들을 낳으면 삼대가 서로에게 그렇게 이죽거리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시아버지는 손재주가 좋아서 목공예 말고도 여러 가지를 하셨다. 일단 요리. 시어머니는 설거지를 주로 하시고 시아버지가 요리를 담당하는 경우가 많았다. 땡스기빙이면 직접 (from scratch) 크루아상을 만드셨고, 크리스마스 시즌이면 쿠키를 잔뜩 굽고 캐러멜도 만드셨다. 우리가 키친에이드 스탠드믹서를 사면서부터는 같이 브랏부어스트도 만드셨다.

우리가 이 집을 살 때, foreclosed된 집이라 보수할 게 많았는데, 그때 정말 많이 도와주셨다. 왕년에 reconstruction 일도 하시고, 보험 감정사(?) 일도 하셨던 가락이 있어서. 그 뒤로도 매년 방문하실 때마다 이곳저곳 손봐주셨다. 마지막 작업이 지난 여름에 만든 뒷뜰의 모닥불가인데, 그걸 두고 다른 곳으로 이사하기가 가슴이 아파진다. 한편, 그때 벌써 평소보다 훨씬 빨리 지치는 기색이 보였다고 남편이 그러더라. 그때 검진이라도 받았으면... 하지만 의료보험이 없는 분들이 그럴 수 없었겠지.

내가 뜨개질/코바느질늘 곧잘 하니까, 자신도 옛날에 코바느질을 했다고 하신 적이 있었다. 그 얘길 듣고 나중에 아들내미에게도 자기가 관심을 보인다면 가르쳐야지 생각했다.

아들내미가 태어나고, 물론 남편을 닮은 것이겠지만 그 부분이 특히 시아버지와 많이 닮아보였다. 아이가 꽤 예민해서 나나 남편은 순둥이였다는데 얘는 왜 이럴까 하는 얘기가 나오자 본인이 colic baby였다고 하신 적도 있었다. 돌잡이에서 망치를 잡은 게 하이라이트였지.

금요일에 시아버지의 남동생 두 분과 그 아내, 그리고 오랜 친구 한 명이 찾아왔다. 그리고 토요일 아침에 산소 호흡기를 떼었다. 숨 때문에 괴로워 하시지 말라고 모르핀부터 투여하고.
그 전부터 마스크를 갑갑해 하며 벗으려고 하셨는데, 막상 벗고 나서도 입을 달싹이셨지만 목소리눈 나오지 않았다.
약 한 시간 동안 쌕쌕거리시다가 임종하셨다.
거의 임종하시는 순간에 아들내미가 바이바이, 파파 라고 말해서 시어머니가 오열하셨다. 그러기 전에 아들내미가 하도 방방 뛰어서 잠시 로비에 데리고 갔다가 내가 아들내미에게 지금 할아버지에게 굿바이 하는 거라고 설명하면서 병실로 돌아갔는데, 그걸 아들내미가 이해한 건지... 아무튼. 참 의도하지도 않았는데 그런 거짓말 같은 순간이 벌어졌다.

그렇게 가셨다. 본인의 61세 생일을 맞고 이틀 후에. 시어머니의 61세 생일 전날에.

시어머니는 사람이 heartbreak로 죽을 수도 있다는 게 이해가 된다고 하시더라. 나도 남편이 저렇게 된다면 그렇겠지.

슬프다. 아직도 실감이 안 난다. 오래오래 아들내미와 좋은 추억 만드셨으면 좋았을 텐데. 아들내미가 꼭 할아버지를 기억할 수 있기를.

세금 생활

할 일은 많은데 하고 싶지 않아서 세금을 정리했다.
나는 사분기마다 세금을 추정해서 내는데, 처음엔 재작년과 비슷하게 내다가 남편도 승진하면서 연봉 오르고 나도 요율 높은 일을 더 많이 받으면서 아무래도 불안하다 싶어 3분기와 4분기에는 두 배로 냈다.
그 결과 연방 세금은 천 불 정도만 더 내면 된다. 이 정도면 선방이라고 생각한다.
한편, 주 세금은 작년과 비슷하게 더 내야 한다. 이건 사분기마다 어찌 낼지를 몰라서 그냥 이렇게 한꺼번에 페널티까지 물며 내는데, 작년에 알아봤을 때는 온라인으로 내기가 쉽지 않은 것 같아서 포기했는데 (계정을 만들려면 어딘가에 전화를 해야 했던가...) 지금 보니까 온라인으로 다 해결할 수 있을 것 같다. 올해부터는 이것도 사분기마다 내야겠다.

자 자 일을 하자, 일을.
너무 큰 일감이 들어와서 좀 질린 상태였는데 세금으로 돈이 나가니 다시 의욕이 생긴다.




확진 가족

시어머니가 차 한 대, 친구 부부가 다른 차, 그리고 다른 친구가 자기 차로 남은 짐을 싣고 어제 도착해서 짐은 스토리지 유닛에 넣었고 자차 갖고 온 과테말라인 친구분은 벌써 떠났고 다른 친구 부부는 내일 비행기로 돌아간다.
그 친구 부부 중 남편은 허리가 아파서 호텔에서 쉬고 있고 부인은 우리랑 같이 바베큐로 점심 먹고 여자들끼리 월마트 갔다가 (중간에 시어머니 우리 휴대폰 플랜에 가입하고) 남편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시아버지 조직 검사 결과 암이 맞단다.
허둥지둥 쇼핑 마무리하고 집에 가는데 친구 부인이 자기 살 물건만 사고 남편이 부탁한 물건을 깜박 잊었다고 했는데. 얼른 병원에 가서 시아버지 보고 싶은 시어머니는 내일 아침에 가라고, 지금 얼른 병원에 가야겠다고 하셨다.
어차피 나는 집에서 아들내미 보고 있을 것이었기에, 그럼 일단 집에 가서 남편과 시어머니가 병원으로 떠나시면 내가 친구분 다시 월마트로 모시겠다고 했다. 시어머니 돕고자 며칠이나 시간을 내신 분들인데 허리 아프신 분 오늘 밤도 고생하시는 것도 (필요한 물건이 냉온찜질에 필요한 것들이었다) 마음이 불편하여.
그래서 집에 가서 남편이 시어머니의 CRV 몰고 병원으로 출발하고, 우리는 우리 CRV로 다시 월마트 갔다. 가서 나랑 아들내미는 차 안에서 기다렸다. 그분이 유치원 교사를 10년 넘게 하신 분이라 애 데리고 마트 들어가면 힘든 걸 아시더라. 한편, 남편에게서는 시어머니가 멘탈이 무너지셨다고 연락이 왔다. 아마 나도 남편이 그런 모습이면 그럴 테지.

쇼핑 끝나고 그분 호텔에 내려드리고 우린 집에 와서 나는 아들내미 놀리다가 낮잠 재우고, 나도 잤다. 한참 자고 남편이 잠자리에 들 때에나 깼는데, 아들내미도 여태 안 깨고 계속 잤단다.
아직 암 전문의 소견을 들어봐야 하지만, 일단 시아버지가 너무 쇠약해지셔서 항암 치료는 못 버티실 것 같다고, 마지막을 준비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하더란다. 그리고 남편도 울었다.

이 정도라면 오시자마자 응급실 갔어도 너무 늦었었겠지. 12월 말에 폐렴인줄 알았을 때 바로 미국 오셨더라면 몰라도...
이렇게 갑작스럽게...
그냥 멍하다.

방심할 수 없다니까. 학교

학교 이메일로 인사과(?-HR)에서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새로 무슨 방침을 정해서 교직원은 다 언제까지 읽고 확인하래서 무심코 링크를 눌렀다. 나는 캠퍼스에 있지도 않은데 상관없지 않나 생각하면서.
브라우저에는 사기 이메일에 조심하라는 경고 화면이 떴다.
돌아가서 이메일을 확인해 보니 과연, 정식 이메일답지 않더라. 주소 도메인도 학교 것이 아니었다. 아들내미 보면서 건성으로 이메일 읽고 아무 링크나 열다니, 나도 정신이 없구나.

몇 달 전에 이런 사기에 많이들 당한다고 학교 IT 팀이 주의를 주는 이메일을 보내더니, 아예 어떻게 예방을 한 모양이다. 다행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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