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 밸리도 생겼겠다,
어차피 두고두고 기억하고 싶은 추억이겠다,
기억이 더 노망스런 장밋빛으로 미화되기 전에 가능한 한 정확하게 기록해두자.
그 때 나는 대학교 2학년.
주변의 커플들의 염장에 몸부림치는 가련한 솔로였다.
근데 어느 저녁, 학교 식당에서 (여자) 친구들과 밥먹는데
친구 하나가 웬 못 보던 남자애와 열심히 얘기하고 있었다.
그냥 관심 없이 고개를 돌리고 다른 친구들과 열심히 수다 떨고 있는데
내 친구가 갑자기 선언했다. "I have found a friend."
그 때 나는 그저, '우리와 동류인가보다, 앞으로 자주 보겠군'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웬걸, 그 이후로 그가 우리 친구들에게 접근하는 일은 없었다.
아마 내 친구와는 같은 전공이었으니까 내가 없을 때도 만날 일이 있었을 수도.
자주 볼 거라고 기대했는데 안 보이니까 호기심이 일었다.
거의 안면인식장애 있는 내가 그의 얼굴을 한 번 흘끗 본 것만으로도 기억한게 지금 생각하면 대단하다 (야구모자와 안경, 수염이라는 특징을 주의깊게 보긴 했었다).
학교 식당에서 특정 요일에 알바하는 걸 알았고
학교에서 유학생 담당 오피스에 들어갔다가 나오는 걸 어느 날 발견하고
들어가서 평소에 친하게 지내던 거기 직원에게 그가 누군지 물어봤다.
거기서 이름도 확실하게 확보했고 내가 미국 오기 전에 살던 동네에서 좀더 남쪽에서 살다 왔다는 사실도 덤으로 알아냈다. (여기서 공통점 하나 더 추가!)
내가 뒷조사하는 걸 의심스럽게 보던 그 직원의 표정이 아직도 기억난다. 그래도 협조해줘서 고마워요, 디 아줌마!
그가 알바하는 요일에 식당에 가서 밥 주문했는데 그의 반응이 퉁명스러웠다. 얘가 나 기억 못하나? 나 싫어하나? 원래의 소심한 나라면 여기서 겁 먹고 물러섰을 텐데 이미 콩깍지 씌여서 무서운게 없었나보다.
어느 날 점심 때, 혼자 식당에서 밥먹고 있던 그를 발견해서, 기회다!하고 다가가서 앉아도 되겠냐고 물었다. 그는 그 날 자기가 좋아하는 조개 튀김이 나왔었는데 나때문에 식어버렸다고 지금도 원망한다.
나중에 들어서 알았지만
당시 남편은 대학교 처음 와서 사귄 친구 (여자) 가 갑자기 겨울 방학 이후 '너 나쁜애라고 부모님이 같이 놀지 말랬어'라는 말과 함께 절교를 선언한데에 상처 입어 거의 여자혐오증이 있었다고. 그래서 일단 자기와 같은 취미를 가졌다고 유명한 내 친구를 정보 공유, 취미 교류를 위해 찾긴 찾았는데 항상 다른 여자애들에 둘러싸여 있어서 더 다가가기 겁났다고. 그리고 내가 접근했을 때도 경계심 가득 품고 일단 앉으라고는 했는데 내가 취미 얘기를 꺼내자 (워낙 거기가 동류를 찾기가 힘든 곳이라) 차츰 마음을 풀고 얘기에 빠져서 내가 여자란 사실이 문제가 되지 않았던 거라고.
그 때 당시엔 난 그런건 몰랐고 그저 나를 내치지 않고 나랑 얘기도 같이 하고, 서로 갖고 있는 걸 공유하고, 그러는게 신났었다. 그 날이 그가 사는 기숙사가 이성에게도 개방되는 날이었던 모양이다. 밥 다 먹고 자기 방에 오라고 해서, 이번엔 오히려 내가 놀랐다. 그래도 되냐고 반문하고 신기해하며 따라갔다. (그 이전에 남자 기숙사에 들어가본 건 딱 한 번이었을 걸.. 그것도 친구의 친구를 따라가서.)
아무튼 그 이후로 신나게 놀았다. 나는 좋았다. 어쨌거나 내가 관심이 간 상대와 시간을 많이 보낼 수 있었고, 즐거운 시간이었으니까. 그 시절 그와 할 얘기가 뭐가 그렇게 많았는지 낮동안에 수업 시간 외의 대부분의 시간을 같이 보내고, 밤마다 전화통 붙잡고 몇 시간씩 수다 떨고, 방학 때 떨어져서도 몇 시간씩 채팅했었고, 그에 대해서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난 그가 탐이 났다. 내가 유대감을 느낄 수 있도록 나와 비슷한 점을 발견하면 발견할 수록, 내가 부족한 점을 보완할 수 있는 그의 다른 점을 발견하면 발견할 수록.
하지만 아서라, 그가 여자들을 싫어하던 단계에서 나와 같이 놀아준 것은 나를 '친구'로 받아들였기 때문임을 몰랐었다. 날이 갈수록 내가 그를 친구 이상으로 좋아한다는 것은 그에게나 내 하우스메이트들에게나 그의 스윗메이트들에게나 명백했지만 그는 항상 우리는 친구일 뿐이라고 못박았다. 하지만.. 사실 그 당시 우리가 하는 짓을 보면 애인같이 보일법 하긴 했다. 밤마다 산책 나가고, 손도 잡고.. (처음 손잡은 날 그의 스윗메이트들에게 들켰다) 서로 어깨 주물러주고.. 뭐 암튼.
그리고 나같이 부모님 생각 안 하는 불효자식이 아니라서 꼬박꼬박 매주 부모님께 '요즘은 __와 이걸 했어요, 내일은 __와 이걸 할 거예요' 이메일을 쓰던 그였기에 그의 부모님도 나의 존재에 대해서 눈치채기 시작하셨다.
나는 이정도 됐으면 우리 사귀어도 되는거 아니냐고 했는데 그는 그러다가 나중에 깨지면 우리의 친구 관계도 사라지는거 아니냐고, 나라는 친구를 잃고 싶지 않다면서 외면했다. 나는 깨져도 친구 관계 유지할 수 있지 않냐고 했던 것 같지만.. 요지부동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목요일이었다), 달빛 아래를 거닐다 벤치에 앉아서 서로에게 기대어 쉬던 중, 그가 말을 꺼냈다.
'남들이 우리 지금 보면 애인이겠거니 할 거야.'
'그렇겠지.'
'어차피 이렇게 된거, 그냥 사귈까?'
정확하게 어떻게 말을 했는지는 모르겠는데 대충 저런 얘기였다.
나는 많이 혼란스러워서 울면서 어째야 될 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 즈음, 사실 나는 포기하려고 마음 먹은 상태였다.
그래서 그에게서 벗어나려고 일부러 그 주말에 아는 교수님이 사람을 모아서 몇 시간 떨어진 곳에 있는 베네딕틴 수도원을 방문하는 거에 참가 신청했었다. 마음도 정리할 겸.
근데 떠나기 전날에 그런 소리 듣고 어리둥절했나보다. 막상 일이 닥치니까 자신도 없었던 것 같고.
하여간에 그래서 그 주말, 베네딕틴 수도원에 가서, 신부님들 생활하는거 구경하고, 여러 가지 역사도 듣고, 유물도 보고, 그 동네 애들이 You're a Good Man, Charlie Brown 공연하는거 보면서 '우리가 한 게 더 낫다'고 생각하며 즐겁게 관광(?)하려고 했으나.. 마음은 온통 그의 생각 뿐. 그 때 같은 방을 썼던 친구가 내 고민을 듣고 학교로 돌아가는 날 아침에 기타를 치면서 'Well, you've gotta go back to your man, and give him an answer, so make up your mind' 뭐 이런 식의 노래를 불러주었던 기억이 난다.
돌아가서 점심 먹으러 오라고 불렀다. 내 고민을 알고 있던 다른 친구와 함께.
그리고 그 오후에는 My Big Fat Greek Wedding을 봤다. 내심, 나와 정말 사귀기 시작하면, 진지해져서 결혼까지 간다면, 저 영화와 비슷한 상황이 올 수도 있는데, 그 각오를 시키고 싶었달까.
그 다음엔 내가 살 것이 있어서 같이 월마트에 갔다.
가서 장을 다 보고 난 뒤였는지, 장 보러 들어가기 전이었는지는 모르겠는데
아무튼 무드없게 그 월마트 주차장에서
'나, 너 없는 데서 머리 식히려고 간 거였는데, 가서 온통 너 생각만 하느라 제대로 구경도 못했어.
우리, 기왕 이렇게 된거, 해보자'
'그러자'
그리고 난 펑펑 울었고, 나한테서 도망 안 가서 고맙다고 했고, 그는 '내가 그동안 널 향해서 달려왔는데 왜 도망가겠어'라고 말해줘서 감동먹었다.
다음날 아침, 너무 행복해서 새벽에 일어나 콧노래를 부르며 월요일 하루를 시작했던 기억이 난다. 하우스 메이트들이 다 '쟤 왜 저래?'하다가 드디어 정식으로 사귀기 시작했다는 걸 듣고 축하해줬다.
...그랬는데 그 다음 주가 Thanksgiving week여서 바로 헤어져버렸다. 난 캠퍼스에 남고, 그는 외할머니네 집에 가고. 걔네 부모님은 데려오지 그랬냐고 하셨단다. 뭐 그 이후로는 Thanksgiving 때마다 그 집에 갔는걸 뭐. 결혼하고서는 크리스마스도 보낸다.
결혼을 하고도 2년이 지나서야 알게 된 사실은,
그토록 친구 이상은 아니라고 고집을 부리던 그의 마음을 돌린 것은,
그의 스윗 메이트들이 하루는 그를 불러서 '너 그러는거 아니다'라고 충고해준 것도 일조했다는 것이다.
K오빠, R오빠, 이 은혜 잊지 않을게요! (..근데 본인들은 언제 장가 가시나..?)
원래 내가 둔하고 띨띨해서
내숭도 못 떨고, 애교도 없고, 밀고 당기기 같은 건 꿈도 못 꾸고,
그냥 우직하게 달려들어서 넘어뜨린 연애지만
행복하게 살고 있으니 된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