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속이 울렁거린다 아들내미

잠을 별로 못 자서 그런가 싶기도 한데.
배고프지도 않지만 김치찌개를 조금 먹었다. 속을 채우면 나을 것 같아서.

한 당뇨 환자의 몇 년치 의료 기록을 번역했는데, 처음엔 혈당화색소가 괜찮았는데 급격히 나빠지더라. 그래서 진료과도 처음엔 내분비과만 있었는데 신경과, 신장내과, 안과 등 자꾸 확장하더니 나중엔 정형외과도 나오더라. 그걸 보면서 괜히 나까지도 우울해졌는데 다행히 시간이 지나면서 좀 회복한 듯. 그래도 식후 2시간 수치는 높더라만.

하기사 나도 케톤생성식을 시작하기 전에는 그런 수치가 흔했지. 지금은 100 넘어가는 일이 드문데.

임신한 즈음 혈당화색소가 5.6%였는데, 지금은 더 떨어졌을 것 같다. 이번에 산부인과 갔을 때 안 재냐고 물으니까 28주에 대학병원에서 잴 거라면서 이번에는 갑상선 검사만 한다고. 그러고 보니 갑상선은 아직 결과가 안 나왔나? 임신 전에는 3달에 한 번씩 쟀는데, 난 임신하면 더 자주 잴 줄 알았건만.

어제 밤에는 자면서 내가 애기가 너무 요란하다고 호들갑을 떠니까 남편이 배에 손을 얹었는데, 몇 번은 움직임을 느낀 것 같다. 근데 오늘 아침에 기분이 어땠냐고 물어보니까 그게 애기였는지 내 움직임이었는지 확실하게 모르겠대.

어제는 시어머니 생신이라 전화를 드렸는데, 초음파 보러 갔을 때 애기가 12온스였다고 하니까 스테이크 사이즈네? 하셔서 크게 웃었다. 막연했는데 그렇게 말하니까 확 와닿잖아. 지금은 더 컸겠지.

시어머니 친구분 하나가 소포를 보냈다. 아기 원지 세 개들이 세트랑 수퍼맨 로고 쿠키커터. 거봐. 옷 살 필요 없다니까. 스포츠 패턴이라 우리 취향은 아니지만 선물은 감사하지.

어제 친정 부모님과도 통화했는데, 엄마 왈 나는 별로 차지 않고 굼실대기만 했다고 한다. 근데 동생은 마구 차서 배가 아플 정도였다고. 남자애라서 그런 모양이라고. ...에이 그냥 우연 아니야? 지금은 아플 정도로 차는 일은 그리 많지 않다만 아플 때가 있긴 하다.

엄마는 맏이가 아들이면 리더쉽이 길러진다며 얘가 훌륭한 인물이 될 거라는 기대를 벌써부터 뿜뿜하고 계시던데, 나는 그런거 하나도 달갑지 않아... 얘 낳고 또 애를 얼마나 더 낳을지도 모르겠고... 엄마는 많이 낳기를 바라는데 말이지.

PCOS 섭레딧에 자살 시도한 사람 얘기가 올라왔는데, 자기가 나중에 혹시라도 좋은 사람을 만나서 결혼한다 해도 딸을 낳으면 절망할 거라는 구절이 눈에 띄었다. 나는 내가 PCOS가 있는지조차 확실하지 않고 일단 지금 행복하게 살고 있으니 그 사람의 처지보다는 많이 나은 형편이겠지만, 그리고 그러니까 아이 성별을 모를 때 딸일까 하는 기대도 은근히 했던 것일 테지만, 아들이란 걸 아는 지금 자기합리화하려는 경향을 차치하더라도, 확실히... 딸이 아닌 것에 안도하게 되는 점이 있기는 하다. 엄마는 엄마들에겐 딸이 필요하다고 하지만 난 글쎄... 리브가와 야곱 같은 모자 사이도 있는 거잖아. 꼭 내가 그럴 거란 얘기는 아니지만. 일단 엄마와 나 사이만 봐도 딸도 딸 나름 아니겠어.

한편으로는, 친딸을 가져본 적이 없는 의붓아버지가 자기 애는 반드시 딸일 거라고 확신해서 기분 별로라는 어느 임산부의 글을 보고 문득, 우리 시어머니는 손녀라도 보기를 희망하고 계시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더라. 남편 전에 아마 한 번 실패한 일이 있던가 그랬고, 남편도 힘들게 낳았고, 그 뒤로 어쩔 수 없었던 건지 아니면 의도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자식이 더 없으셨는데, 딸을 못 가져본 아쉬움을 손녀로 대신 풀 기대 같은 거 말이다. 글쎄?

뭐 지금의 나는 그저 얠 일단 무사히 낳고 보자는 생각이다. 남편도 그닥 전형적인 남자가 아니고 나도 전통적인 여성상과는 거리가 먼데, 생물학적으로 남자라고 해서 그게 뭔 대수야. 그냥 건강하게 잘 키우면 되는 거지.

그래도. 예쁜 여자 아기 물건을 보면 못 고른다는 게 좀 아쉽긴 하다.

전에 누가 아는 사람 아기 사진 찍어준 걸 보여줬는데, 아기가 꽤 예쁜데 옷차림이 수수한 걸 보고 아들이구나 싶었다. 원래 그런 거에 눈치 없던 나지만, 이제는 내가 애엄마인데 부러 날 잡아 사진을 찍는다면 딸이라면 옷을 그렇게 심심하게 입히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더라고.

근데 막상 애 낳고 보면 너무 힘들어서 그냥 대충 아무거나 있는거 입히고 살지 않을까?

아마 나보다 남편이 더 센스 있게 차려입힐 것 같은데. 미적 감각도 그렇고.

일단 나는 나부터도 별로 차려입을 줄 모르잖아...

아무튼.

이제 정말 자자. 이런저런 생각 해봐야 무슨 소용이니.
울렁거리는 것도 많이 가라앉았다.
잠을 더 보충하자.

21주 아들내미

이번에는 약간의 변화가 있었다.

일단 어제. 아침부터 속이 메스껍더니 결국 아주 약간 토했다. 김치찌개를 먹었었는데. 그나저나 김치찌개는 왜 이렇게 맛있는 거야. 다만 한꺼번에 많이 먹지 않도록 주의 중.

그리고 배꼽 아래에서 태동이 느껴진다는 게 무슨 말인지 알 것 같다. 아직 kick인지는 모르겠지만 다들 kick이라고 하니 그런가보다 한다. 특히 일요일날 F부인이 만든 파운드 케익을 한 입 먹었더니 설탕 때문인지 딸꾹질하나 싶을 정도로 한동안 거의 규칙적으로 움직임이 느껴지더라.

어제 동네 산부인과에 갔는데, 이번에는 소변검사에서 케톤만 높게 나왔다. 그야 당연한 거고. 아무런 감염 없다니 다행이다.
혈압이 100대/70대로 나와서 오르는 건가 걱정이 되었는데 (임신 전엔 이완기도 60대였어서) 지금 찾아보니 80 이하면 괜찮은가보군.
심박수 잠깐 들었는데, 한참을 실랑이해야 했던 지난번과는 달리 이번엔 바로 갖다대자마자 잘 들렸다. 분당 150.
체중이 확 늘었는데도 그에 대해선 아무 말 없더라.

앱에선 크기를 청경채/바나나/당근이라고 한다. ...마음에 안 들어!

남자애 이름을 열심히 찾고 있는데 아직 별 소득이 없다. 남편이 한글 이름은 도깨비 어떠냐 했는데 태명이면 모를까 이름으로는...;;; 암튼 현재는 메밀이라고 부르고 있다. 메밀차를 많이 마시고 있기도 하고. 도깨비 보면서 메밀군 인형이 탐나기도 했고.

남편이 메밀 발음을 잘 못하는데 (주로 메믈...), 한 번은 밀로라고 하더라고. 그래서 그 이름이 잠깐 마음에 들었다. 독일 이름이기도 하고. 하지만 미국에선 마일로라고 발음하니까 별로였는데, 요즘 소아성애 관련해서 시끄러운 누군가의 이름이기도 해서 역시 탈락.
남편이 독일계라서 그런지, 내가 한국어 다음으로 배운 게 독일어였기 때문에 그런지, 자꾸 독일 이름이 눈에 띄는데 문제는 미국에선 발음이 달라진다는거... 성별 모를 때 여자애 이름으로 자비네가 마음에 들었는데 영어로는 새빈... 안젤은 앤쓸... 토비아스는 토바이아스... 뭐 이런 식이니. 남편 조상의 출신지가 독일과 프랑스의 경계이기도 했는데 불어 이름을 찾아볼까. 불어는 내가 잘 모르니 발음에 그리 구애받지 않을 지도.

어제 밤부터 두통이 심했는데 아침에 깬 지금도 머리가 여전히 아프다. 두통이 잦지는 않은데 가끔 이럴 때가 있다.

임부복이 있을까 해서 TJ Maxx에 갔는데 못 찾았고 대신 애기용품 보다가 상어 모양 담요랑 공룡 모양 후디를 샀다. 나는 벌써부터 돈 쓰는 거 마음 내키지 않았는데 남편이 귀엽다고, 여기 이월 상품 처리하는 가게기 때문에 지금 안 사면 나중에 발견 못한다고 주장해서 넘어갔다.

H부인이 벌써부터 사고 싶은 게 많다며 애기 방 테마가 뭐냐고 물었는데, 나는 딱히 테마를 정할 생각도 없었건만 남편이 보바 펫 등을 살 계획이라고 말해서 졸지에 스타워즈로 정해졌다. ...엄마는 난데 왜 나보다 더 신나하는 것 같지?

하긴, 남편 직장 동료들도 남편보다 더 신나하면서 벌써부터 선물 목록 어디에 등록했냐고 묻는댄다. ... 사실 아마존에서 공짜로 주는 물품 받으려고 목록을 시작하기는 했지만 뭐가 필요한지도 모르겠고 솔직히 베이비 샤워 한대도 올 사람도 얼마 없으니까 그냥 공개하지 말자는 생각이 굳혀지고 있던 차였는데. 아마존 리스트는 만들어두면 할인 혜택도 있으니까 뭐 완성하기는 하겠지만.

주말에 드디어 남편이 아기 방 만들기 위한 작업에 나섰다. 아랫층을 정리해거 털실 보관용 플라스틱 수납장 등을 그리로 옮기고 작업실을 비운 다음 카펫을 뜯어냈다. 손님방의 침대를 이리로 옮기기만 하면 일단 이 방은 끝나는 거다. 그리고... 손님이 자주 오는 것도 아니니까 이 방을 손님방으로 쓰면서 작업실로도 겸할 생각이다. 털실도 현재 작업하는 것만 가져다놓으면 되니까.

아기 방이 될 현재 손님방은 냥이들이 침대에서 자곤 하는데, 침대를 옮기고 나면 과연 어쩔까 궁금하다. 요즘 케일리는 우리 침대에서 잔다만. 다른 사람들 글을 보니 아기 오기 전에 아기 가구를 차지하던 냥이들도 아기가 오고 나면 얼씬도 하지 않는다더라.

남들은 벽화도 그리고 뭐 정성스럽게 꾸미는데 나는 아무 생각이 없다. 종이접기로 모빌을 만들까 하는 생각만. 뜨개질도... 여자애라면 예쁜 패턴이 많은데 남자애라니까 의욕이 뚝 떨어진 듯? 아니 남자애라도 재밌는 패턴 찾아보면 많은데 왜... 그냥 지금 일이 너무 많아서 그럴 겨를이 없는 거라고 하자.

페이스북에서 난 이 이름이 좋더라 하면서 이름 권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냥 살포시 무시 중이다. ...우리 마음에 들어야지! 근데 인터넷으로 남들 얘기 보면 하도 황당한 게 많아서 이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더라. 최근에 본 중 압권은 첫 애를 곧 낳을 사람한테 자기 7개월된 젖먹이한테도 젖 먹여달라고 하는 시사촌이었다. 뭐 저런...!

암튼. 밖에 나가서 남들 애기 보면 더 이뻐 보이고 그래. 내 애는 어떨까.

제발 아빠 닮아라 아들내미

병원 가기 전에 남편이 페이스북에
로빈인지 배트걸인지 알아보러 병원 간다고 올렸고
갔다와서는 전에 월마트에서 산 수퍼맨 원지 사진과 함께
로빈 옷은 못 발견해서 수퍼보이로 대신한다고 올리는 것으로
성별 공고도 해치웠다.

이러기 전에 일단
시부모님한테는 전화로 알렸고
친정 부모님은 한국이 새벽이라 카톡으로만 알렸고

그 다음엔 모임 식구들과 동네 친구들에게 문자와 이메일로 알렸다.
친구들 중 한 명이 "미니 (남편 이름)이네!" 하고 답문을 보냈는데,
정말 그래. 제발 남편의 미니 버전이 나와주었으면 좋갰다.

물론 유전자는 이미 정해졌지만 환경 또한 무시 못하니까
어차피 아빠 닮을 거지만
아무튼.

배려가 몸에 밴 사람이고
생각이 깊으며
눈치도 빠르고
유머 감각도 있으며
성실하다.
책임감도 강하고
다정하고
이해심 많고
좋아하는 것을 깊게 파는 열정이 있고
남들에게 휘둘리지 않는 뚝심도 있다.

물론 단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야 인간인데 완벽할 수 있나.
아무튼 단점보다는 장점이 훨씬 더 존재감이 큰 사람이라
만나서 친구가 되었을 때부터 반했고 집요하게 쫓아다닌 끝에 이렇게 코 꿰어찼으니 내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그런 아빠를 꼭 닮아라.
내가 매일 아빠 아기 때 사진 보며 기도할게.

나도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 노력할게.
그치만 나는 닮지 말고 아빠만 닮아라.

나는 피해 의식이 심하고 자존감도 낮으며 항상 의심하고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피곤한 사람이야. 소신도 없고 눈치도 없고 감정에 욱해서 실수도 많이 저지르지. 문제에 맞서기보다는 그냥 회피하고 비겁하게 도망치기 급급해. 책임을 질 상황을 아예 만들지 않으려고 하지. 매사에 자신이 없으니까. 하지만 너는 내가 최선을 다해서 기를게.
나 닮지만 마.

한국어 못해도 좋아. 그냥 영어만 해도 괜찮아. 스페인어도 관심 없어도 좋아. 수학 싫어해도 좋아. 그냥 아빠만 닮아.


...근데 어차피 일찍부터 매직더개더링이랑 디앤디 할 거라서 숫자 감각은 금방 익히게 될 거라고 기대하는 나는... 어쩔 수 없나.

아무튼.

지금 내 기분은 이렇다 치고.

좋은 엄마가 되려면
나도 나를 존중하고 아낄 줄 알아야 할 텐데.

그게 지금부터 되려나...

20주 덧. 아들내미

앞 글은 사진 첨부하느라 앱으로 썼더니 수정이 용이치 않아서 그냥 따로 쓴다.

일단 배에서 뭐가 많이 요란하게 느껴지기는 하는데 아직까지 차는구나 싶게 구체적인 건 없다. 그냥 움직이는구나 하는 정도.

혈당은... 혹시나 싶어 곡물차에서 메밀차로 바꿨더니 다시 내려갔다. ...그냥 평생 메밀차 마시고 살 듯. 지금도 아침 식사 후에도 76이라 인슐린 아직 안 놓고 있다.

체중은 지난 주에 급격히 늘은 이후 서서히 오르는 듯. 근데 그리 많이 먹는 것 같지도 않다. 익숙해져서 그런가. 사실 어제 레스토랑에서 먹은 것도 옛날 같으면 양이 적다 생각했을 것 같은데.
전날 미리 자축하는 의미로 집에서 커다란 뼈있는 립아이에다 랍스타 꼬리를 먹었는데 말이야.

그냥 많이 먹으려면 들어가기는 하는데
적게 먹어도 배가 부르다고 할까.
암튼. 슬슬 또 훈제 연어 스프레드 만들려고.

사실 일요일날 예배 직전에 화장실에서 볼일 보고 나니 휴지에 피가 묻어 있더라. 소량이라 안심했지만 그래도 덜컥 겁이 났다. 그런데 월요일에도 또 그랬다. 그러다 문득 생각이 나서 남편에게 봐달라고 물으니 역시나. 근처 부위에 한선염이 터졌다. 그니까 이 피는 애기랑은 상관 없는 거였다. 휴우 다행.

암튼 이제 내 체중이 남편보다 더 나갈 때가 많다.
거울 보면 배가 그렇게 나온 것 같지는 않은데.

그리고 전치 태반 얘기도 많이 읽어서 걱정했는데, 어제 별 얘기 없었으니 내 태반 위치는 괜찮은 모양이다. 저기 뒤에 태반이 있다고 했는데 그게 누구 기준에서 뒤인지...

아침에 일어나면 손이나 다리가 푸석푸석한 느낌이 종종 난다. 벌써부터 붓기 시작하나 싶은데 아직 신발은 잘 맞고 반지도 쉽게 빠진다. 뭐 반지는 미리 반 사이즈 큰 걸 새로 주문해서 바꿔 낀 거긴 하다만...

아기가 아들인 걸 아니까 뭔가 기분이 새롭다.
그러고 보면 태명도 그렇고 은근히 딸을 기대하고 있었던 건지
뭔가 미래 상상도가 아기자기하고 화려하고 예쁜 분위기에서
갑자기 투박하고 거칠어진 느낌...?
근데 원래부터도 나는 꾸미는거 신경도 안 쓰고 잘 못하니까
남자앤게 다행인지도.

우리 그룹에서 그동안 딸만 줄줄이 여섯 태어났는데
(론은 태어난 다음에 합류했으니까)
드디어 아들이 나오네.
대학교 친구들도 아들보단 딸이 압도적으로 많아서
아들인 게 반갑기도 하다.

이렇게 내 마인드는 알아서 아들인 걸 환영할 핑계를 마구 만들고 있다.
아니 핑계랄 건 없지만 암튼 자기합리화의 과정이라고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레딧에서 역시 최근 아들인 걸 알게 된 임산부가 자기 나르시스트 엄마가 벌써부터 애 이름을 마음대로 지은 얘기를 보니까 딱 우리 엄마가 내가 한국어 이름 생각하는 것에 퇴짜 놓은 게 (한자가 뜻이 더 많아서 좋다고. 난 순우리말로 짓고 싶은데) 떠오르더라. 그나마 한국은 친척 이름 따오는 풍습이 없으니까 엄마가 구체적으로 이 이름 붙여라 하지는 않는 것이겠지.


딸이 아니라서 서운해 하는 게 아니야, 아가야. 그냥, 두루뭉실하게 아기라고 생각하면서 딸일 경우에 할당했던 상상들을 삭제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아쉬움일 뿐이야. 네가 아들이라서 생기는 새로운 상상에 공간과 가능성을 더 할애하는 과정이지.

냥이들도 다 암컷인데
우리 집 성비 균형이 조금은 나아진다는 생각도 있고.
...녀석들이 남편이 수컷이라서 더 좋아하는 거라면
아기도 좋아하겠지.


그냥 마냥 신기하다.
새삼.
아기가 내 속에서 자라고 있다는 게.
어제 초음파에서 척추가 보이고 다리 뼈 팔 뼈가 보이던데
마냥 신기하더라.


주수에 잘 맞게 크고
너무 크지는 말고
적당할 때 나오렴.

엄마 아빠가 사랑을 듬뿍 줄게.



20주 아들내미


드디어 반 왔다.
크기는 한 앱에선 벨기에 옹디브, 하나는 망고, 하나는 바나나랜다.
그런데 무게는 10-10.5 온스라고 하는데,
어제 초음파 검사에선 12온스쯤 된다고 했다. ...큰 편인 건가?

어제 초음파 검사는
11월인가, 임신 확인하고 처음 산부인과 갔을 때 예약을 했던 거였다. 내가 병원을 동네에 있는 거랑 우리 학교 대학 병원의 토피카 지점 (본점은 캔자스 시티에 있다) 두 군데를 다녔는데, 같은 주에 두 군데 다 초음파를 보는 등 경제적으로 좀 걱정이 되는 상황이긴 했다. 동네 건 백몇십불, 대학 병원 건 이백몇십불, 보험 후에 이렇게 들어서. 애기 사진 보는 건 좋지만 너무 비싸잖아. 한국 산모들은 오만원도 비싸다고 불평하던데 나는... 건당 천 불 내지 않는 것도 다행으로 여기고 있으니. (전에 간 초음파가 내가 내는 것만 천이백불인가 그랬다.)

아무튼. 이 초음파는 몇 달 전부터 동네 병원에서 예약 잡혀있었고, 지난 달에 대학 병원에 갔을 때 거기서도 20주 초음파 예약하려고 하길래 내가 동네 병원에서 이미 잡혀 있는데 여기서도 또 해야 하냐고 하니까 의사가 그럼 거기서 하고 자기네는 결과 보고 얘기만 하자고 했었다. 그래서 괜찮은 줄로 알았다. 이번 주에는 화요일은 동네 병원에서 초음파 보고 목요일엔 토피카에서 문진만 하는 걸로. 그래서 남편도 화요일은 일찌감치 휴가를 내었다. 같이 애기 확인하기 위해. 그리고 저녁 때는 동네 레스토랑에 예약도 했다. 아기가 무엇인지 확인하는 기념/발렌타인데이도 겸사겸사 자축하려고.

한편, 요즘 포켓몬고에서는 발렌타인데이 이벤트로 분홍색이 들어가는 포켓몬 출현률이 대폭 높아졌는데, Porygon은 우리 동네에서 안 보이는 거라. 레딧을 보니 캔자스 시티랑 토피카의 특정 지역에선 잡몹 수준으로 나온다기에 우린 한 쪽을 갈까말까 고민하며 일단 아침에 나와서 브런치를 먹었다. 그게 아홉 시쯤이었는데. 음식이 나와서 먹으려는 순간 전화가 울렸다. 동네 병원이었다. ...보험 처리하려면 초음파 검사 이번 주에 하나만 되는데, 대학 병원 기계가 더 좋은 거라 오늘 예약은 취소하고 목요일에 보라고. 아니 오늘 보기 위해 남편도 휴가 냈는데 이럴 수 있냐고 하니까 그럼 대학 병원에서 오늘 볼 수 있는지 알아봐준다고 하고 끊었다. 화가 나서 먹지도 못하고 있었는데 다시 전화가 왔다. 캔자스 시티에 있는 본점에서 11시 십오분에 하나 자리 있다고. 냉큼 가겠다고 했다. 그래서 동네 산부인과는 다음 주 화요일로 다시 잡았다. 암튼 그래서 브런치는 무슨 맛인지 느끼지도 않고 그냥 억지로 먹었다.

그래도 다행인 건 그냥 두 군데 다 초음파 진행하고 나중에 청구서 폭탄 맞는 일은 없었다는 점이고, 목요일에 내가 운전해서 토피카 가는 일도 없게 되었다는 점이지. 그리고 캔자스 시티 가보니까... 남편이 운전한 게 천만 다행. 다운타운 근처라 엄청 복잡했다. 간신히 차고에 주차하고 병원 건물로 건너와 물어물어 고위험군 산모 센터에 갔는데... 체크인할 때 주차증에 도장 찍으라네? 그런줄도 모르고 주차증 차에 두고 왔는데. 그래서 남편은 차에 뛰어갔다 오고, 나는 도중에 이미 불려들어가고. 접수하는 직원이 남편 오면 들여보내준대서 그나마 안심. 문자로 어느 방인지 얘기도 했다.

일단 경부 길이를 재는 건 질 초음파로 본대서 하의는 탈의했다. 그러고 천으로 덮고 기다리고 있으니 남편이 들어왔다. 휴우 다행. 뛰어오느라 숨을 몰아쉬더라.

경부 길이는 4.1센티인가 그랬는데, 아무 말 없는거 보니 괜찮은 건가보다.
그 다음엔 복부로 진행했다.

머리 둘레, 배 둘레는 19주 얼마로 나오고
팔다리 길이는 20주 얼마로 나오던데
머리만 안 크면 나는 감사하지.
아기는 내 등을 향해 엎드려 있었다. 머리가 위라서 breech baby라고 입력하던데, 이에 대해서도 역시 말이 없으니 아직까지는 괜찮은가보다. 열심히 고양이 자세 해야겠다.

한참 이런저런 부위별 사진을 찍다가 성별 알고 싶냐고 묻더라. 부탁한다고 하니까 아들이랜다. 그리고 다리 사이를 보여줬다. 딸이면 뭐가 없을 테니 확실한 거겠지. 아들이라. 아들이라.
뭐랄까, 확 기쁜 건 아니고 잔잔하게 점점 들뜨는 기분? 어차피 어느 쪽이든 상관은 없지만, 일단 내 염원이던 시아버지-남편-아들의 삼대가 말로 투닥거리는거 볼 수 있게 된 건 좋더라. 뭐 딸이어도 투닥거릴 수 있는 거긴 하지만. 그리고, 이왕 내 자식일 거면 여자보다는 남자가 낫지 않겠나 싶더라. 딸이면 날 닮으면 세상 살기가 고달플 거고 날 안 닮으면 나하고의 관계에 문제가 많지 않을까. 뭐 그래도 딸도 가져보고 싶지만.

남편은 나중에, 일단 나중에 결혼시킬 때 결혼식 비용 안 대줘도 돼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하더라. 그렇게 치면 대학교 학비는? 그리고, 남자애니까 자기 물건만 간수 잘 시키면 된다고, 여자애면 조심해야 하는 남의 물건이 너무 많은데 남자애라 그건 쉬운 편이라고... ...아이고야 이런 생각을 실제로 하는구나.

어쨌거나, 여태 태명으로 리버니 코덱스니 불렀는데, 사내애라는 걸 알고 나니 뚝 끊겼다. 코덱스는 양쪽 다 가능하다지만 우린 펠리샤 데이의 캐릭터를 생각하며 여자애 느낌으로 불렀거든. 이름을 얼른 찾아야...

초음파 테크니션은 애기 얼굴을 보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중간에 나보고 일어나서 옷 입고 아기 위치 바꾸도록 좀 움직여보라고 했는데, 소용 없었다. 다리 사이는 잘도 보여주면서 얼굴은 참 안 보여주더라. 결국 코랑 턱 사진은 대충 찍고 끝났다. 벌써부터 고집이 센 아기네.

다음 달 예약을 잡는데, 직원이 거기로 잡길래 토피카로 해달라고 했다. 거리는 비슷하지만 여긴 훨씬 더 복잡하고, 주차비도 내야 하잖아 (확인도장 찍고 3불이었는데, 안 찍었으면 얼마였을진 모르겠다). 토피카는 그냥 단층 건물이라 차에서 내리면 바로 들어갈 수 있다고. 여긴 5층이었는데, 엘레베이터로 올라올 때 매 층에서 서는 바람에 어지럽더라.

암튼 그렇게 병원 방문을 마치고, 근처에 우리가 잘 가는 헌책방이 있어서 일단 그리로 먼저 간 다음, 근처에 포리곤이 나온다는 지점을 확인하려고 했는데... 헌책방 가는 길에 포리곤이 떴다. 그래서 내가 두 폰으로 다 잡고, 유유히 헌책방 갔다. 기왕 캔자스 시티 온 김에 한인가게도 갔다. 국간장이랑 콩나물이랑 두부랑 김치를 사고 다시 집으로 갔다.

옷 갈아입고 (커플티로 포켓몬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레스토랑에 갔는데 남들 퇴근 시간이라 많이 밀려서 몇 분 늦었다. 암튼 예약한 덕분에 바로 자리에 앉아서 주문하고 음식 나오면 먹고. 애피타이저로는 꼬치에 구운 삼겹살. 메인은 나는 오리 가슴살, 남편은 스테이크. 사이드로 나는 고구마 무스 남편은 얇게 저며 구운 감자가 있었는데 둘 다 브로콜리니로 바꾸고. 남편은 케일 볶은 것, 나는 브로콜리랑 콜리플라워 익힌 것도 있었는데 다 맛있었다. 케일을 별로 안 좋아하는 남편이 감탄할 정도로.

먹고 나서 그 근처의 월마트에 갔는데, 애기 옷이 마땅한 게 없어 보였다. 그렇다. 주변에 딸 가진 집이 많아서 딸이었으면 물려받을 옷이 많은데, 아들이라 대폭 줄었다. 라는 것은 우리가 사도 된다는 얘기...

다운타운에 가서 포켓스톱도 돌리고 학교/지역 물건 파는 가게에 들어가서 학교 마스코트의 애기 버전이 있는 원지 두 벌을 샀다. 한 벌당 18불이나 해서 나는 사는 걸 망설였는데, 남편이 앞으로 아끼면 된다고 설득. 큼직하게 12개월이랑 18개월 사이즈로 샀다. 신생아 사이즈는 얼마 못 입고 금방 커버린다 하니.



암튼 그러고 집에 왔다.

아기가 남자애라니까, 열심히 남자애 이름을 찾는데, 아직까지 그닥 확 마음에 드는 건 없다. 일단 후보는 몇 개 정해놨는데.

병원 주차장에서 시부모님께 전화 드렸는데, 얘기하기도 전에 시아버지는 아들이라고 확신하시더라. 남편 생각엔 무언가 보신 게 아닐까.

부모님한테는 카카오톡으로 말씀드렸는데, 별 반응은 없었다. 엄마는 이름 정하는 것에 대해서도 한바탕 설교를. 그냥 무시 중. 현재 동생 졸업식 때문에 두 분 다 한국에 계신다.

아. 할머니한테나 전화 드릴까. 아들이라니 기뻐하시겠네.

이러다 딸이면... 뭐 괜찮아. 여자애가 남자 옷 못 입을 게 뭐 있어.

아무튼. 은근히 애기가 뭐가 잘못 됐으면 어쩌나 걱정하던 차였는데
무사한 거 확인했으니 다행이다.
그게 제일 중요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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