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추판다님 댁에서 요즘 heuristics얘기가 나와서 생각해보니..
남이 옳지 않은 일을 하는 것을 보고 법이 해결해주기를 기다리지 않고 스스로 응징하는 것도 하나의 heuristic이라는 생각이 든다. 뭐, algorithm이라고 하기엔 법과 그것을 실행해주는 시스템도 완벽하지 않고, 단지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공통점만 있을 뿐이겠지만.
실용적인 측면에서 heuristics는 나쁘지 않다. 내가 월마트에서 쥐덫을 찾는데, 매 isle마다 뒤지고 다니는 것보다는 비슷한 다른 아이템 - 살충제, 청소 도구 등 - 이 있는 곳을 찾아서 거기서부터 뒤지는게 더 효율적인 것처럼.
마찬가지로 누가 잘못을 저지를 때, 그를 저지할 알고리즘이 여의치 않다면, 그 상황에서 개인이 행동해서 그 잘못을 막는 것이 효율적일 수도 있다. 그 사람을 바른 길로 인도하는 것이든, 아니면 최소한 그 사람의 악행으로 인한 피해를 줄이는 것이든.
하지만 사람의 잘잘못을 가려 벌을 주는 일이 heuristics에 의해 처리된다면 억울한 사람도 많아지고, 벌을 받아야 하는데 안 받는 사람도 많아질 수 있기 때문에 가능한 한 algorithm을 세우려고 하는게 아닐까. 예를 들어 해리 포터 5권.. 슬리데린 하우스에 속한 학생들에게 하우스 포인트를 깎을 권한이 생기자 단지 마음에 안 든다는 이유만으로 별 트집을 잡아 다른 하우스의 점수를 마구마구 깎아댔지. 정작 자신들의 잘못은 서로 눈감아주면서. 아니면 데스노트. 미디어에 공개된 범죄자들은 재판의 기회도 없이 죽어나갔다. 그게 오보였으면 어쩌려구.. 그리고 미디어에 나오지 않은 범죄자들은 키라의 단죄를 피할 수 있었을 테고.
사실은 내가, 다른 사람들을 신경쓰고 살지 않기 때문에, 나를 거슬려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 사람들이 단순히 감정만으로 나를 괴롭힐 수 있는 힘을 주고 싶지 않기 때문에 (이미 국민학교, 중학교 시절에 겪어봤으니까) 이런 것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Just World Phenomenon. 자신에게 유리한 세상이라면 바꾸고 싶지 않겠지. 자신에게 불리한 세상이니까 바꾸려고 하는 것이지. 뭐 나는 바꾸려는 노력도 하지 않는 비겁한 우울증 환자이지만.
물론, 내가 우려하는 것은 극단적인 상황일 뿐이라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리분별을 잘 해서 적당한 선에서 멈추고 말 거라는 얘기도 있겠지. 하지만 악용하는 사람들도 반드시 생긴다. 뭐, 그건 법도 마찬가지 아니냐고 하면 역시 할 말이 없어지나.
아파하는 사람이 있다. 나는 의사가 아니니까 그 사람을 어떻게 도와줘야 하는지 모른다. 그렇지만 아픈 사람을 그대로 두고 볼 수 없다면 나는 내가 생각하기에 적당한 처치를 하는 것이 나을까, 아니면 의사를 부르는 것이 나을까?
이 경우에는 내가 가진 heuristics 자체가 얼마 없을 테니 algorithm을 택하기 쉬울 것이고, heuristics의 댓가가 인명과도 연결되는만큼 위험부담이 구체적으로 느껴져서 설령 몇 가지 있더라도 역시 안전하게 algorithm을 선택하지 않을까.
나는 너무 이상만 바라보고 있는 모양이다..
실제로 참을성도 많지 않으면서... 피해의식만 가득해서.
왜 이런가 곰곰히 생각해보니.. 아마 친구의 일화가 생각나서 그런게 아닐까.
그 친구는 이민2세대 교포고, 한국말이 서툴렀다. (오죽했으면 내가 자기 집에 놀러갈 때 자기 부모님이랑 얘기 많이 해서 자기에게 자기 부모님이 어떤 사람들인지 알려 달라고 했을 정도..)
근데 한 번은, 자기 오빠한테 이름을 부른다고, 삼촌에게 다짜고짜 따귀를 맞은 적이 있다는 것이다.
그 일이 한국에 놀러갔는데 생겼는지, 아니면 삼촌이 미국에 방문했는데 생긴 일인지는 듣지 못했다. 어쩌면 삼촌은, 자기 형님이 설마 애들에게 한국식 교육을 안 시켰을까 생각해서, 친구가 알면서도 일부러 버릇없이 구는 거라고 생각해서 때리신 건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한국 사람으로서는, 오빠를 오빠라고 안 부르고 이름으로 부르는게 따귀 맞을 만큼 나쁜 일인가보다.
하지만 미국 문화에선 이름으로 부르는게 자연스럽다. 그 친구는 단지 평소에 하던대로 하고 있었을 뿐이다. 그럼 이건 삼촌이 참작을 해주셔야 하는게 아닌가? 그런 것을 생각하지도 않고 속으로 버릇없다고 판단하고 징벌부터 하면 도대체 무엇을 성취하는 것일까? (....blast it, can't find a better expression..)
어른이면 아이에게 자기가 생각하는 정의의 잣대로 징벌해도 좋다는 관행이, 친구의 삼촌에게 손이 쉽게 올라가게 해준 것이 아닐까? 보통 이런 상황에선 내가 옳았으니, 이번에도 내가 옳은 것이 틀림없어! 그러니 전후사정은 생략하고 일단 벌부터! 이런 식으로.
물론 사리 분별력이 있는 어른이라면 함부로 하지 않을 일이겠지만.. 그렇지 않은 어른들도 있기 때문에, 그리고 보통 냉철한 판단을 하는 사람도 이성이 마비될 때가 있기 때문에 더욱, 조심해야 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벌이란, 나쁜 짓을 한 댓가로 준다기보다는, 그 사람이 앞으로 그런 잘못을 하지 말라고, 혹은 다른 사람들이 보고 그 짓을 하지 말라고 하는 경고의 기능을 한다고 생각한다. 즉, 그 사람을 파괴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좀더 나은 사람이 되게 하고자 주는 것이 벌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해도 고쳐지지 않는 사람이라면 어쩔 수 없이 격리시켜서 최소한 그 사람의 악행으로 인한 피해를 줄이는 것이고.
결국은.. 내가 나를 믿지 못하니까 남도 믿지 못하겠다는 소린가보다.
이렇게 나약해서 어찌 살아가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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