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포터1권재독. by Semilla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첫 4권의 내용이 나중 3권의 내용보다 더 잘 기억나는 것은, 그 4권은 스페인어로 읽어서 그런게 아닐까 하는.  스페인어가 영어보다 많이 딸리다보니 모르는 단어의 뜻을 파악하기 위해 문맥에 더 집중했을 테니까.  하지만 변수는 더 있다.  처음 책들은 나중 책들보다 훨씬 짧으니까 기억할 게 상대적으로 적고, primacy effect일 수도 있고, 영화를 봐서 그럴 수도 있고 (게다가 나중 영화일수로 빠트린 내용이 더 많으니까 reminder로서의 기능도 떨어진다) 무엇보다도 이 '기억의 차이'라는 것 자체가 정확하고 객관적인 사실이 아니라 그냥 내 주관적인 느낌일 뿐이니까 뭐 그다지 큰 의미가 있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한글과 영어의 알파벳(스페인어나 독어와는 다른)이라는 문자 체계의 차이에 대해서 내가 생각해온 것과는 일맥상통하는 데가 있으니까...

아무튼,
1권.

덤블도어에게서 배울 것이 많다.
그는 분명 호그와츠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빤히 알고 있었을 테고,
단박에 위험 요소를 제거할 능력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자기가 나서서 호그와츠를 안전하게 만들기보다는
해리에게 이런저런 단서를 흘려주고 자리를 깔아주어서
해리가 스스로 퍼즐을 풀고 적과 맞설 기회를 주었다.

만약 그가 일을 처리했다면
당장은 호그와츠가 안전했을지 몰라도
나중에 해리가 볼디모트를 대적할 정도로 레벨업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가르치는 일도 이와 비슷하다.
그냥 아이들에게 지식을 떠먹여준다든가, 앞에서 문제를 풀어보여서 아이들이 답을 카피하게 하는게 아니라, 문제 상황을 제기하고, 힌트는 많이 놓아주되, 아이들의 흥미를 유발하고, 결국 스스로 문제를 찾아내고 풀어내게 만드는 것이랄까.
...말하기는 쉬워도 이행은 참으로.......

결국은 dependency의 문제다.
내가 해결해서 남들이 나에게 의존하게 만드느냐,
아니면 위급 상황시에는 내가 달려들 수 있도록 곁에서 지켜는 보되,
일단 남에게 성장의 기회를 주느냐.

물론, 내 아이가 고생하는 것을, 실패하는 것을 지켜보는게 힘들 수 있겠지.
하지만 실패의 경험을 앗아가는 것은 더욱 위험한 짓이다..
아이가 자랄 기회도 놓칠 뿐더러, 나중에 내가 없는 곳에서 실패를 경험했을 때 그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비뚤어질 수 있다.
실패를 통해 배울 생각은 못하고 그저 좌절에 빠진다거나.
어렸을 때 실패에 대해서 배워서 훌훌 털고 일어나는 힘을 기르는게 낫다.


첫번째 책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부분은 여전히, 네빌이 10점 받을 때.
왜냐 하면 나도 매우 불우한 어린 시절을 겪었고
남들에게 잉여 취급 받으면서 스스로를 잉여 취급하다가
갑자기 인정받게 되었을 때의 환희의 순간을
알기 때문이지...

사실 영화에서 가장 아쉬운 것도 네빌의 뒷얘기이다.  네빌의 부모 역시 용감하게 싸우다 죽었고, 네빌도 어쩌면 운명의 아이였을 수 있으며, herbology 하나는 잘했는데.  그런게 하나도 안 나와.

하지만 사실 보통 사람에게 있어서 정말 희망의 메세지를 주는 것은 네빌이다.  네빌은 해리처럼 특별한 운명이 예언된 것도 아니고, 이마에 이상한 상처가 있지도 않으며, 많은 핸디캡을 가지고 있지만 그래도 주어진 상황에서 열심히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다보니 어느 사이에 놀림은 줄어들고 마지막에는 적을 상대하는데 상당히 중요한 역할도 하고.  꼭 특별하지 않아도 괜찮아.  제 팔자를 원망하지 않고 할 수 있는 것을 찾아 노력하다 보면 썩 괜찮은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는.  평범한 사람에게 희망을 주는 케이스.


그러니까 힘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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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리포터2권재독. 2009/08/06 11:04 #

    해리포터1권재독. 뭔가 뒷 내용과 연결되는걸 많이 pick up했는데 읽고 나니 생각이 안 나는게 마치 꿈을 꾸고 난 것 같은 느낌. 일단 그 책. 해리가 도비를 풀어주기 위해 양말에 넣어 루시우스 말포이에게 건네줬더니 루시우스가 던졌지. 양말은 도비가 받아챙겼고. 책은 그대로 그 자리에 둔 건가? 그리고 그걸 덤블도어가 다시 줏은 거야? 이 책에서 가장 좋은 부분은 끝에 자신과 볼드모...... more

덧글

  • 당근 2009/07/31 23:58 # 답글

    저도 네빌이 좋아요 ^^
  • Semilla 2009/08/01 00:48 #

    영화의 네빌도 배우가 참 말쑥하게 커서 보기 좋더라구요. ^^
  • 무아 2009/08/01 10:49 # 답글

    네빌~!
    마지막 권 보면서...아 해리포터의 또다른 주제는 네빌의 인간성장기였나..했다는.
    저도 네빌이 얘기 더 나오길 기대했었는데.
  • Semilla 2009/08/02 03:56 #

    어떻게 보면 정말 네빌도 또다른 주인공 같지요..
    스네이프도 그렇고...
  • Mannoya 2009/08/01 22:00 # 답글

    해리포터..시간을 내어 제대로 한번 또 읽어보면 좋겠어요. 저도 해리보다는 언저리 사람들이 더 관심이 많이 가더라구요.
  • Semilla 2009/08/02 03:56 #

    해리는 사실 좀 현실적이지 않기도 하고 말예요.. 주변 사람들이 더 이입하기 좋더라구요.
  • kristine 2009/08/02 17:35 # 답글

    저도 neville longbottom 참 좋아해요~~~ 그가 자신감을 회복하는 모습을 늘 delightful하게 보고 있어요.
  • Semilla 2009/08/03 10:15 #

    참 보기 좋지요, 네빌...
  • 루나리나 2009/08/04 23:21 # 답글

    그러고보면 론도 반장도 해보고 퀴디치 우승도 하고 퀸카랑 결혼도 했어요!!
  • Semilla 2009/08/05 04:38 #

    아 맞아요 론도 처음엔 많이 초라했는데 어느새 우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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