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장 잔고가 바닥나도... by Semilla

어제 헤이스팅스에 갔다가 Adult Swim DVD들을 18불에 파는거 보고 Robot Chicken Seasons 2 & 3 샀다. 뭐 수표 두 개 올 게 있으니 월요일까지만 버티면 돼.

오늘도 찬양 연습이 있었다.  여름이라 다들 떠나니까 계속 여기 남아있는 우리가 자주 뛰게 된다.
거의 매주 교회에 결혼식이 있는 모양인데, 오늘은 그동안 본 중 가장 화려하게 꾸며 놨다. 여기저기에 하얀 리본과 꽃과 초와... 누가 하는 걸까, 저런 일은. 결혼 파티 전부가 힘을 합칠까?

우리 결혼식은 매우 간촐하게 했는데, 내가 저런거 볼 눈도 없거니와 일단 저런 꾸미는거랑 나중에 치우는거 귀찮다고밖에 생각 안 하기 때문에 나로서는 만족스러웠다. 어차피 한국의 전통 혼례복을 입고 결혼했기 때문에 미국사람들 눈보시는 충분히 시켜줬다고 생각하고.
한편 남편은 과테말라에서 본 예쁜 성당들 중 하나에서 결혼식을 하고 싶다는 생각도 했던 적이 있다고. 하지만 어차피 우린 그럴만한 상황도 아니었고.  사실 기왕이면 학교에 있는 채플에서 하고 싶었다.  학교에서 만나 연애한 우리니까 그게 가장 의미 있을 거라고.  하지만 졸업식날에 결혼하기로 결정했기에 학교에선 채플을 빌려줄 수가 없는 상황이었고, 그저 우리는 결혼식을 올릴 수 있는 장소가 필요했다.  그래서 된다고 한 첫번째 교회를 바로 잡았다.  공교롭게도 그 교회가 B교수님이 다니는 교회였다.

우리가 다녔던 대학 근처에 숲 속에 있는 진짜 예쁜 채플이 하나 있는데 여기서 결혼식을 올리려면 최소한 1년 전에 예약을 해야 한다고 한다.  그런 커플들은 약혼 기간이 1년 넘는다는 얘긴데... 나같으면 못 기다릴 듯.  아니, 그렇게 준비도 못해.

그러니까.. 여자들 중엔 결혼식날에 대해서 오랜 꿈을 키워와서 가장 완벽하고 예쁜 이벤트로 만들 야망이 있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우울증 때문에 극히 낮은 자존감으로 '나 따위 결혼할 상대도 없고, 나같이 불행한 자식 낳아서도 안 되고..' 이런 생각으로 그런 꿈을 키우지 않았기 때문에 결혼식에 별 미련이 없었던게 아닐까.
그저 결혼 생활을 빨리 시작하고 싶은 마음에, 결혼식은 그냥 그것을 여는 형식일 뿐, 그 자체에는 크게 의미를 두지 않았던 것도 같고.  사실 그냥 서류상으로만 결혼하면 어떨까, 하는 마음도 있었고.

아 그래, 나도 결혼식에 대한 꿈 하나는 있었다.  전통혼례복에 족두리, 비녀, 댕기, 연지곤지.  근데 한국에선 어차피 폐백이란게 따로 있다더라.  그래서 당연히 그런 차림 하게 되겠지 라고 생각하고 별 신경을 안 썼었던 것 같다.  한동안 나는, 만에 하나 결혼을 한다면 그래도 한국사람이랑 할 것이라 생각했었으니까.

우리가 딸을 낳으면 그래도 가능한 한 예쁜 결혼식을 하게 해주고 싶을 것 같아.  (미국은 결혼식 비용은 신부측이 보통 댄다고 한다.)

우리가 못 누린 걸 자식에게 누리게 하고 싶다는 얘기로 치자면
어제 헤이스팅스에서 거대한 드래곤볼 패키지를 보고 내가 '나 한국에 있을 때 전권 모았었다고 얘기했어? 하지만 한국 나오면서 다 남 주어버렸지.. 엉엉..'하니까 남편도 '나도 과테말라로 가면서 Hardy Boys 전질을 잃었고..'하고 서로의 losses를 나열하기 시작.  끝맺음은 그래서 우리가 어디 정착하면, 반드시 permanent하게 해야 한다고, 그래서 우리 자식들은 그런 설움을 겪지 않게 하자고.

...그런데 말이야.. 인생에서 어차피 원하는 것을 다 가질 수 없다는 교훈 정도는 어렸을 때부터 배우는게 좋지 않을까? 

뭐 어차피 앞 일은 모르는 일이지.
as long as they don't take things for gra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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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목없음) 2009/08/09 08:46 #

    통장 잔고가 바닥나도... 솔직히 내가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이 재미 있을때가 많다. 물론 나는 나의 반을 채워주는 사람은 없다. 물론 그런 존재가 없어도 드림웨딩을 생각해 보는 것은 재미난다. 일단 나는 예식장 결혼식을 좋아하지 않는다. 나에게 예식장 결혼식은 50분동안 유지되는 교향곡을 일악장 한부분, 이악장 한부분, 삼악장 한부분해서 15분만에 결론내리는 음악같다는 느낌이 든다. 일단 번잡스럽고,시끄럽고, ...... more

덧글

  • kristine 2009/08/09 07:37 # 답글

    헤이스팅스가 뭐에요??
  • Semilla 2009/08/09 12:26 #

    책, 음반, 영화, 비디오 게임, 등등을 사고 팔고 비디오게임과 DVD의 경우는 대여도 하는 곳이예요. 저희 부부는 수집욕심이 많아서 지출을 많이 하게 되는 곳이죠....
  • kristine 2009/08/09 14:07 #

    혹시나 제가 사는 동네도 있나 봤더니 없네요~~ 저도 수집 욕심이 많아요. 고서나 음반 디비디 그런거 좋아해요.
  • Semilla 2009/08/10 01:51 #

    꼭 헤이스팅스가 아니더라도 이런 중고거래 가능한 가게는 있을 것 같은데요.. 저희도 여기만 가는게 아니라 CD Tradepost, Vintage Stock, Half-Priced Bookstore 등을 돌거든요. 비슷한 컨셉의 가게가 크리스틴님 사는 곳 주변에도 있을 거예요..
  • 밤비마마 2009/08/12 12:52 #

    오...아마 중부에만 있는 체인인가 봐요. 서부에선 본적이 없네요.
    근데 요새 책이나 음반이 오프라인에서 팔리나몰라요...다 다운로드나 인터넷으로 사니까...
    울 동네 반즈 엔 노블도 없어지고 티제이 맥스가 들어왔더군요..ㅠㅜ
  • kristine 2009/08/12 13:14 #

    반스 앤 노블이 없어진것은 참 안타까운 소식이네요~~~ 음반은 잘 모르겠지만 책의 경우는 사람에 따라서 기다리는거 귀찮아서, 혹시 오는동안 생채기 날까바, 온라인 구매 좀 걱정된다면서..오프로 구할려는 사람도 꽤 있더라고요. 반스 앤 노블이나 보더스는 베스트 셀러같은거는 30~40프로 하면 아마존하고 비슷하기도 하고요~~~ 제가 사는데는 북오프가 있어요. 영어책도 있어서 자주 애용하는 편이고.....
  • Semilla 2009/08/13 02:33 #

    kristine님 말씀처럼 오프라인에서 책 구하는 사람들도 꽤 많아요. 저희 옆 동네에 있는 몰에는 새 반즈엔노블이 생겼더라구요. 저희 동네에는 Borders가 있고요.
  • 2009/08/09 07:39 #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09/08/09 13:50 #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
  • Semilla 2009/08/10 01:49 #

    음.. 조만간 포스팅을 할게요.
  • 택씨 2009/08/10 09:21 # 답글

    한국에서는 결혼식이 보통 큰 스트레스인데 말이죠.
    저도 결혼 준비는 한달 여 하고 결혼했지만.... 신경쓸 일이 너무 많아서 녹초가 되었어요.
  • Semilla 2009/08/10 11:24 #

    한달이면 꽤 짧은 거 같은데요... 그럼 그만큼 스트레스의 밀도가 높으셨을 것 같은...!
  • 루나리나 2009/08/10 18:38 # 답글

    결혼식은 무슨 생각을 하더라도 원하는 대로는 안 되는것 같아요 -.-;; 너무 부정적인 마인드가 되버렸습니다 orz
  • Semilla 2009/08/11 00:30 #

    앗 그래도 이미 치르셨으니까... 계속 부정적이실 필요는 없지 않나요...
  • 무아 2009/08/12 08:44 # 답글

    한국이나 아시아권 결혼식은 규모가 커지고 화려해지는 대신에
    신랑신부에게 주가 가는 것이 아니라 그 부모님이나 가족들의 잔치가 되버리는 일이 많은 것 같아요.
    그런면에서 아싸 외국에서 하는 바람에 손님수도 줄이고; 하는 것도 이점이 있는 듯.
    뭐, 꼭 왔었으면 하던 선생님이나 친구들을 못 본 건 어쩔 수 없지만
    확실히 원하는게 쏙쏙 다 들어가 있는 걸 하긴 힘들겠죠.

    전 식전에는 막 하고 싶은 것도 많고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는데
    치루고 나니까 하고 싶던 것들 다 못했어도 흡족했어요..일단 탈없이 안전;하게 결혼했다는 그 안도감에;


  • Semilla 2009/08/13 02:34 #

    저도 탈없이 결혼한 것 자체가 제일 흡족했어요.
    한동안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이러고 있었죠..
  • kristine 2009/08/13 16:44 #

    그런데 하객규모와 관련해서도 상당히 차이가 있더라고요.한국에서는 신랑쪽, 신부쪽같이 다 합쳐서 최소 100명이상은 잡는 것 같더라고요. 신랑쪽이나 신부쪽의 부친의 사회적인 위치에 따라서 저는 500명선까지도 본것 같아요. 보통 아무리 적어도 제 친구들 결혼은 아무리 못해도 200명이 최소로 달리는 것 같더라고요. 제 친구들이 좀 좋은 집에 시집들을 가서 결혼식이 좀 컸어요. 그런데 일본 같은 경우는 그 숫자가 상당히 우리랑 개념이 다르더라고요. 우리는 100명선 하면 적당한 작은 결혼식인데 거기서는 200명가까이 왔다고 하니까 다른친구가 ' 연예인 결혼식도 아니고~~ ' 하고 나오더라고요. 보통 그동네는 백명 미만인것 같더라고요...
  • Semilla 2009/08/14 08:21 #

    여기도 그 동네에서 오래 살았고 부모가 어느 정도 명망이 있으면 하객이 많이 오고 그래요. 남편 친구 중 하나는 400명이 오더라고요. 또 다른 친구는 둘이 작은 시골 출신이라 그 마을 사람들이 전부 와서 커졌고요 (한 200명인가).
  • kristine 2009/08/18 14:16 # 답글

    아참참 세미쟈님 새로운 발견을 해서요... 그 헤이스팅스가 아마존 마켓플레이스라고... 아마존에서 중고거래상들이 물건 리스트들을 올리던데 헤이스팅스도 올라와 있던걸요~~
  • Semilla 2009/08/18 23:44 #

    그렇군요. 꽤 큰 체인이니까 그럴 법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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