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파님의 [en] Can't stop thinking about it so here goes again 을 보고.
우리 지도 교수님은 10여년 전에도 한국인 대학원생을 받으신 적이 있었다.
그 분은 랩 미팅에서 자기보다 늦게 들어온 대학원생이 자기 뜻과 일치하지 않는 의견을 내놓으면 어떻게 선배한테 그렇게 무례할 수 있냐고 그 자리에서 chew out 했다고, 지도 교수님이 얘기하신 적이 있다. 물론, 미국인인 그 후배 대학원생은 동료 대학원생들과 지도 교수님 앞에서 자기 의견을 말하는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것이 설령 앞서 발언한 다른 대학원생의 의견과 충돌하는 것이 있을지라도. 그렇게 다양한 의견이 나와야 발전이 있는 것 아니겠어. 중요한 것은 각자 자기 입장을 얼만큼 논리적으로 펼치느냐, 그래서 듣는 사람들이 일리가 있다고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느냐이지, 누가 먼저 의견을 말했고, 그 사람이 그 랩에 얼마나 있었거나 나이가 얼마나 많으냐는 내용 자체와는 상관 없을 텐데. (물론 다른 사람들이 내 의견에 동의하게 만드는 데에는 오랜 시간의 친분 같은 것이 작용할 수도 있긴 하다. 꼭 내가 저 친구랑 더 오래 알았으니까 라기보다는 저 친구가 헛소리 하지 않을 위인이란 걸 아니까.. 같은..)
전에 한국에 갔을 때 지하철에서 멕시코인처럼 생긴 외국인을 보고 반가워서 말을 걸었는데 인도인이었다.;; 뭐 어쨌거나 말은 걸었으니까 얘기는 계속 했는데. 그 사람은 삼성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곧 모토롤라로 옮길 거라고 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한국 회사는 누구의 의견이 더 창의적인가, 더 합리적인가, 같은 것은 상관 없이, 무조건 연장자의 말이 법이 되어서 싫다고 했다. 나이 젊은 사람은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를 내놓아도 받아들여지지 않는다고.
물론 미국 사람들이 상대의 연륜을 무시하고 자기가 무조건 옳다고 주장하는게 항상 보기 좋지는 않다. 대학교 때 들었던 honors 수업 하나는 사회에서 technology가 급격히 발전하면서 많은 변화가 찾아오는데, 그 안에서 어떻게 윤리적으로 행동할 것인가에 대한 것이었다. 상당히 철학적이고 복잡한 수업이었고, 지금 생각에는 차라리 철학과 교수가 가르치는게 낫지 않을까 싶었는데 (결국 내가 졸업할 즈음에 아예 카탈로그에서 없어졌다) 단지 technology에 관한 것이라는 이유만으로 공대 교수들이 가르쳤다. 공돌이=사회성 결여 라는 공식이 항상 맞지는 않지만, 우리를 가르치시던 교수님도 역시, 말발은 그다지 효율적이지 않으셨다. 그래서 본인의 가르침을 그렇게 효과적으로 학생들에게 전달하지는 못하셨다. 그렇게 되니까 안 그래도 입학할 때부터 cream of the crop이라고 우쭐대던 honors학생들은 따따따따 교수님을 몰아붙이더라. 어느 정도 교수님의 point를 이해할 수 있었던 나는 (그러나 나 역시 표현력이 딸려서 그 입장을 다른 친구들에게 이해시키지는 못했다) 그 애들이 어떻게 그렇게 교수님을 무시할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Office hour에 찾아갔더니 졸고 있더라, 얘기하는데 갑자기 엉뚱한 소리를 하더라, 뭐 이런 식으로 점점 수업 외의 영역에서까지 교수님을 헐뜯기 시작했다. (물론 지금 생각해보면 그만큼 교수님이 바쁘셨고, 아마 이 수업 맡은 것도 학교에 봉사하는 심정으로 했던 것일 텐데 된통 잘못 걸리셨던 거란 걸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학부생일 때는 교수의 입장까지 생각하기 쉽지 않다.)
나이가 있다고 무조건 그에 복종하는 것은 싫다. 누구나 다 헛점은 있게 마련이고, 무언가를 같이 하는 입장이라면, 모든 영역을 검토하는 것이 더 좋을 것이다. 내가 못 본 것을 남이 보았으면 다행 아닌가. 나이가 무슨 상관이야.
한편, 나이가 있는 사람의 말을 내가 이해할 수 없다고 무조건 무시하는 것도 좋지 않다.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것에서 나오는 관점이라면, 역시, 내가 생각하지 못한 것을 생각했을 수 있다는 가능성이 있지 않은가.
결국은 겸손이 필요하다.
모두 다 자기에게 헛점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누가 지적하면 그것을 감사하며 받아들이는 그런 태도.
....근데 이건 그다지 발단이 된 글과는 크게 관련이 없는 얘기가 되어버렸군.
아니, 사실은 이런 얘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무언가 social blunder를 저질렀을 때,
'후배가 감히 선배에게 어떻게...'
라는 생각으로 응징을 하면
그건 '선배=untouchable'로 만든다. 후배는 선배의 신경을 거스릴 것이 두려워 선배 앞에서는 너무 조심하느라 기여할 수 있는 것도 기여하지 못하게 될 가능성이 많다.
누가 social blunder를 저지른다면
그 부분에 대해서 친절하게 지적하고 가르쳐주는 것이
그 사람을 돕는 일일 것이다.
그리고 생판 모르는 남이 지적하는 것보다는
어느 정도 시간을 같이 보내고, 친해진 사람이 지적해주는 것이 더 잘 먹히겠지.
결국은 서로에게 관심을 가지고, 인격적으로 알려고 하는 마음이 필요하다.
근데 솔직히 저 경우 먼저 접근한 후배부터 그럴 생각이 없어보이는데
선배가 그렇게 하기도 곤란할 것 같다.
아무튼
누가 잘못을 해서 벌을 준다고 하면
그 벌은 잘못을 당한 사람의 감정을 풀기 위한 것인지
그 잘못한 사람이 행동을 고쳐서 앞으로 잘못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인지
그리고 그 잘못한 사람이 뉘우칠 가능성을 높이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근데 감정이 그걸 흐려 놓는다.
선배 후배라는 관계가 그걸 더 흐려 놓는다.
뭘 말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결국 lo que sea...
우리 지도 교수님은 10여년 전에도 한국인 대학원생을 받으신 적이 있었다.
그 분은 랩 미팅에서 자기보다 늦게 들어온 대학원생이 자기 뜻과 일치하지 않는 의견을 내놓으면 어떻게 선배한테 그렇게 무례할 수 있냐고 그 자리에서 chew out 했다고, 지도 교수님이 얘기하신 적이 있다. 물론, 미국인인 그 후배 대학원생은 동료 대학원생들과 지도 교수님 앞에서 자기 의견을 말하는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것이 설령 앞서 발언한 다른 대학원생의 의견과 충돌하는 것이 있을지라도. 그렇게 다양한 의견이 나와야 발전이 있는 것 아니겠어. 중요한 것은 각자 자기 입장을 얼만큼 논리적으로 펼치느냐, 그래서 듣는 사람들이 일리가 있다고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느냐이지, 누가 먼저 의견을 말했고, 그 사람이 그 랩에 얼마나 있었거나 나이가 얼마나 많으냐는 내용 자체와는 상관 없을 텐데. (물론 다른 사람들이 내 의견에 동의하게 만드는 데에는 오랜 시간의 친분 같은 것이 작용할 수도 있긴 하다. 꼭 내가 저 친구랑 더 오래 알았으니까 라기보다는 저 친구가 헛소리 하지 않을 위인이란 걸 아니까.. 같은..)
전에 한국에 갔을 때 지하철에서 멕시코인처럼 생긴 외국인을 보고 반가워서 말을 걸었는데 인도인이었다.;; 뭐 어쨌거나 말은 걸었으니까 얘기는 계속 했는데. 그 사람은 삼성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곧 모토롤라로 옮길 거라고 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한국 회사는 누구의 의견이 더 창의적인가, 더 합리적인가, 같은 것은 상관 없이, 무조건 연장자의 말이 법이 되어서 싫다고 했다. 나이 젊은 사람은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를 내놓아도 받아들여지지 않는다고.
물론 미국 사람들이 상대의 연륜을 무시하고 자기가 무조건 옳다고 주장하는게 항상 보기 좋지는 않다. 대학교 때 들었던 honors 수업 하나는 사회에서 technology가 급격히 발전하면서 많은 변화가 찾아오는데, 그 안에서 어떻게 윤리적으로 행동할 것인가에 대한 것이었다. 상당히 철학적이고 복잡한 수업이었고, 지금 생각에는 차라리 철학과 교수가 가르치는게 낫지 않을까 싶었는데 (결국 내가 졸업할 즈음에 아예 카탈로그에서 없어졌다) 단지 technology에 관한 것이라는 이유만으로 공대 교수들이 가르쳤다. 공돌이=사회성 결여 라는 공식이 항상 맞지는 않지만, 우리를 가르치시던 교수님도 역시, 말발은 그다지 효율적이지 않으셨다. 그래서 본인의 가르침을 그렇게 효과적으로 학생들에게 전달하지는 못하셨다. 그렇게 되니까 안 그래도 입학할 때부터 cream of the crop이라고 우쭐대던 honors학생들은 따따따따 교수님을 몰아붙이더라. 어느 정도 교수님의 point를 이해할 수 있었던 나는 (그러나 나 역시 표현력이 딸려서 그 입장을 다른 친구들에게 이해시키지는 못했다) 그 애들이 어떻게 그렇게 교수님을 무시할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Office hour에 찾아갔더니 졸고 있더라, 얘기하는데 갑자기 엉뚱한 소리를 하더라, 뭐 이런 식으로 점점 수업 외의 영역에서까지 교수님을 헐뜯기 시작했다. (물론 지금 생각해보면 그만큼 교수님이 바쁘셨고, 아마 이 수업 맡은 것도 학교에 봉사하는 심정으로 했던 것일 텐데 된통 잘못 걸리셨던 거란 걸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학부생일 때는 교수의 입장까지 생각하기 쉽지 않다.)
나이가 있다고 무조건 그에 복종하는 것은 싫다. 누구나 다 헛점은 있게 마련이고, 무언가를 같이 하는 입장이라면, 모든 영역을 검토하는 것이 더 좋을 것이다. 내가 못 본 것을 남이 보았으면 다행 아닌가. 나이가 무슨 상관이야.
한편, 나이가 있는 사람의 말을 내가 이해할 수 없다고 무조건 무시하는 것도 좋지 않다.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것에서 나오는 관점이라면, 역시, 내가 생각하지 못한 것을 생각했을 수 있다는 가능성이 있지 않은가.
결국은 겸손이 필요하다.
모두 다 자기에게 헛점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누가 지적하면 그것을 감사하며 받아들이는 그런 태도.
....근데 이건 그다지 발단이 된 글과는 크게 관련이 없는 얘기가 되어버렸군.
아니, 사실은 이런 얘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무언가 social blunder를 저질렀을 때,
'후배가 감히 선배에게 어떻게...'
라는 생각으로 응징을 하면
그건 '선배=untouchable'로 만든다. 후배는 선배의 신경을 거스릴 것이 두려워 선배 앞에서는 너무 조심하느라 기여할 수 있는 것도 기여하지 못하게 될 가능성이 많다.
누가 social blunder를 저지른다면
그 부분에 대해서 친절하게 지적하고 가르쳐주는 것이
그 사람을 돕는 일일 것이다.
그리고 생판 모르는 남이 지적하는 것보다는
어느 정도 시간을 같이 보내고, 친해진 사람이 지적해주는 것이 더 잘 먹히겠지.
결국은 서로에게 관심을 가지고, 인격적으로 알려고 하는 마음이 필요하다.
근데 솔직히 저 경우 먼저 접근한 후배부터 그럴 생각이 없어보이는데
선배가 그렇게 하기도 곤란할 것 같다.
아무튼
누가 잘못을 해서 벌을 준다고 하면
그 벌은 잘못을 당한 사람의 감정을 풀기 위한 것인지
그 잘못한 사람이 행동을 고쳐서 앞으로 잘못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인지
그리고 그 잘못한 사람이 뉘우칠 가능성을 높이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근데 감정이 그걸 흐려 놓는다.
선배 후배라는 관계가 그걸 더 흐려 놓는다.
뭘 말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결국 lo que sea...



덧글
택씨 2009/08/11 09:12 # 답글
저도 일단 open mind엔 공감이에요. 정말 연장자의 의견에 반하는 의견을 내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현실적으로 느끼고 있구요.대부분의 선배라고 하는 사람들이 두려워 하는 것은 다른 여러가지 대면하는 상황에서 동등하게 맞먹으려는 태도를 후배가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회사에서도 보면 30대 초반의 사람이 20대에게 이런 얘길 곧잘 하더라구요. (본인들도 반대 상황에서는 그렇게 행동하면서 말이죠.)
Semilla 2009/08/11 11:30 #
'동등하게 맞먹으려고 한다'라는게 무엇인지 모르겠어요...
택씨 2009/08/11 13:11 #
간혹보면 공(公)과 사(私)를 구분 못하고 친구처럼 막 대하는 어린 사람들이 있더라구요.
Semilla 2009/08/11 21:28 #
어린 사람은 공과 사를 구분하지 못한다는 뜻인가요?그러고 보니 한국은 친구라는 말이 동년배에만 적용되는 듯하군요...
택씨 2009/08/12 09:05 #
얘기가 길어지는 것 같아서 트랙백으로 답변 드릴께요.
2009/08/11 14:41 #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
Semilla 2009/08/11 21:29 #
존경 받으려면 존경 받을만한 사람이어야 하는데 나이만 먹었다고 존경받을만한 자질이 저절로 생기는 것은 아닐 테지요..
2009/08/11 14:45 #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
Semilla 2009/08/11 21:30 #
사람 사이에 어려워해야 한다니 좀 그렇네요. 직장 상사라서 그런게 아니고 나이 때문이라니..
무아 2009/08/12 06:56 # 답글
외국에서 좋았던 것 중에 하나가 친구 범위가 정말 넓어진다는 거였어요.나이에 구애를 받지 않으니까 너도 친구 이 아저씨도 친구 이 아줌마도 친구..
한국에 있을 때 같은 학교에 같은 전공이라서 시간을 같이 많이 보내더라도 일단 한살이라도 위라면
'친구'는 아니잖아요. 그러다보니 대화하는 내용이라던가..친밀해지는 정도가 제한 되는 듯.
더 친할 수 도 있는데 나이의 제약 때문에 그게 어느 이상 가까워지지 못한 것 같아서
지금 생각하면 좀 아쉽기도 해요.
Semilla 2009/08/12 09:27 #
네 전에도 '친구'의 범위가 한국은 좁다는 글을 쓴 적이 있었어요. 대학 다닐 때 집에 가서 엄마한테 친구들 얘기하다가 문득 '한국 사람이었으면 언니라고 불렀을 텐데..'하고 깨달았지요...
루나리나 2009/08/13 19:17 # 답글
저도 최근에 이런 일로 충돌이 있었어요. 전 상사거나 학교 선배거나 하면 관계정립이 확실한데 학교 동기인데 나이가 차이가 나고 나이 어린 학교선배까지 끼면 정신이 혼미해지더라고요;; 전 그냥 다 존대말 쓰던가 다 반말로 통일하고 싶은데 사정상 그렇게 안되고 ㅜㅜ
Semilla 2009/08/14 08:22 #
그런 경우에는 그냥 서로 존댓말하는게 제일 나을 것 같은데... 서로 눈치를 잘 봐야 하는 건가요;;
kristine 2009/08/14 15:57 #
제가 실습할때 일이엇어요. 저희 과는 나이차가 다양하거든요.40대 목사사모님까지 있어서 아무리 같은 동기라도 한살이라도 많으면 언니였어요. 그런데 실습을 나갓는데 저보다 한살이 어리던가 하는 사람이 반말을 하는데 상당히 당황했어요. 나중에 그 친구가 반말 하는 것을 보고 다른 학교에서 온 친구가 이의를 제공하니까 이 친구가 하는 말...' 같은 학년인데 뭘~~ ' 이라고 하더라고요.제 친구 한명은 특별한 상황이 아니면 그러니까 아주 친한 사이 아니면 처음부터 적당하게 존대말을 쓰는 편인데 저는 오히려 그쪽이 편한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사람이 반말을 시작하면 이상하게 관계가 Formality가 낮아지는 것 같아요. 솔직히 저는 부부간에도 존대말 쓰는것 참 좋아보이거든요. 물론 저희 부모님이 그러셔서 그런지도 모르지만... 인간관계에서 적정한 formality는 중요하다고 봐요.
Semilla 2009/08/15 05:30 #
저는 formal하다는 건 거리를 둔다는 거랑 비슷하게 생각돼서아직 잘 모르는 사람하고는 정중하게 하더라도
한편으로는 계속 거리를 두는 것도 '난 너랑 친해질 생각 없음'이라는 표시 같아서
뭐 어렵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