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과 성서. 문화/언어


나에게는 언제나 내 언어 능력이 미스테리인데,
현재는 잠정적으로 일단 phonological awareness가 뛰어난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만으로 다섯 살 때 독일어를 접하면서 독일어에 있는 phoneme들을 틔운 것이
나중에 영어를 배울 때도 도움이 된 것이려니.

오늘 성경을 읽으면서 문득 든 생각은
어렸을 적에 갖고 있었던 6권짜리 이야기 성서가 성경책과는 약간씩 다르게 고유 명사를 표기했기 때문에 (예: 에서 vs 에사우) 그 두가지를 비교하면서 내가 phonemes에 대해서 implicitly meta-knowledge를 얻게 된 것이 아닌가 싶다.

벧엘, 베데스다, 베들레헴을 보고 벧-이 집이구나 유추했던 것은 당시에도 explicitly aware했지만
이번 것은 좀더 새로운 insight. I suppose I should just write in English instead of going back and forth.

근데 그럼 굳이 이글루스에서 블로깅을 할 필요가 없잖아.

뭐 어쨌거나.

성경책을 어려서부터 읽었던 것이 이런 식으로도 도움이 되었구나 하는 생각과
한편으로는 내가 원래 이런데 관심이 많았구나 하는 새삼스러운 자각.
애기들 말 배울 때는 TV 시청이 도움이 안 되지만
나는 말을 어느 정도 배운 다음에 TV를 보면서 유심히 퍼즐맞추기를 했기 때문에 도움이 되었던 것일 테지. internally driven motivation, focused attention, 그리고 implicit metalinguistic awareness 등이 어우러져서 bootstrapping이 가능했던 것이리라.

결국, 내가 타고난 기질과 환경이 운좋게 맞아떨어져서 생긴 결과려나.

사실 영어로 수업 처음 받을 당시에도
열심히 모르는 단어 따로 체크하고 사전 찾아보고 하는 노력이 없었던 건 아닌데 내가 스스로는 기억을 못하고 당시 썼던 공책을 보고 내가 이랬구나 유추하는 거지. 기억하는 건 모 만화 팬픽 번역을 하면서 퍼즐맞추기를 즐겼다는 것. 당시, PC 통신 동호회에서 참 맛깔나는 굴 쓰는 사람들을 보면서 대체 무엇이 저 사람들의 활동의 원동력인가 의아해하다가, 종교가 없는 사람들은 열정을 이런 것에 쏟아부을 수 있나보다 잠정적으로 경론 내렸었는데. 그 때 그 신기한 추진력이 나에게는 팬픽에 대한 갈망의 형식을 취해서 영어 학습에 박차를 가했던 거다.

intrinsic motivation. 이게 제일 능률이 좋다잖아. 왜, 지지자는 불여호지자, 호지자는 불여락지자래잖아.

하기사, 당시 중국어로 된 팬픽에도 들이댔던 걸 생각하면 진짜 이 내적 동기란 것의 버프 효과가 뛰어나단 걸 실감할 수 있긴 하다.

결국,

어렸을 때부터 뭔가를 꾸준히 관심 가지고 즐기면서 깊이 팔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며 동시에 본인 기질에 맞는 그 뭔가를 발견해내야 한다는 결론인가보다.

내 경우는 그게 말소리 비교였고.

아, 하나 더.

상기한 성경과 성서의 차이는 phonologically transparent한 한글로 읽었기 때문에 내가 비교할 수 있었던 거다. 한글이 아닌 다른 글자체계였으면 별 도움이 안 되었을 지도.
오늘도 역시 세종대왕님 만세.


그런데 그럼 한글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다 이 이점을 주워먹을 수 있느냐, 하면.... 그건 또 본인 기질에 따른 문제이려나.

일단 이 점에 대해선 전에 했던 연구의 후속으로 언젠가 디벼보고 싶긴 하지만 과연 할 수 있으려나... 아무래도 한국에서 실험하는게 필요할 것 같은데. 뭐 그건 그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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