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매일이 전쟁이다 아들내미

토요일이었나. 잠을 못 자서 비실비실거리다 차 문에 왼손 엄지가 끼여 손톱 아래로 멍이 들었다. 눈에 불이 나게 아팠다. 아들내미는 당연히 이해하지 못하고 그저 안아달라고 떼를 썼다. 나는 대체로 무시했다. 아빠가 열심히 달랬다.
일하면서 음성 인식으로 타자를 대신해야 하나 고민했는데, 다행히 왼손 엄지는 타자 치면서 쓰는 일이 드물더라.

친구네 딸 보는 일은 애들 외할아버지 상을 당하면서 친구가 일찍 퇴원해 필요 시 돕기로 하고 일단 보류 상태가 되었다. 아버지를 잃은 친구는 안됐지만 아들내미의 질투를 감당하기 힘들었던 나로서는 다행이었다.

한동안 칩멍크 버전 업타운 펑크와 모아나에서 특히 마우이의 You’re Welcome을 좋아하던 아들내미는 어느새 트롤로 갈아탔다. 하루는 심지어 트롤 블루레이 디스크를 만지작거리길래 전에 봤던 것 나머지 틀어주니까 보더라. 우와!

한편, 나는 안나 켄드릭과 저스틴 팀버레이크한테 전혀 관심 없었는데 트루 컬러즈 뮤직 비디오를 보고 옛날에 로맨스물을 보면 받던 간질간질한 느낌(영어로 하자면 butterflies in my stomach)이 들어 매우 호감이 올라갔다. 영화 자체는 좀 전개가 어이없는데 노래 때문에 푹 빠졌다. 뭐 사실 아들내미 달래는 데 만점이라는 점에서 너무나 고맙고.

유튜브에서 알아서 틀어준 영상 중에 올라프가 성탄절에 대해 알아보는 뮤비도 있는데, 이것도 좋아하더라. 딱히 나는 겨울왕국 보면서 올라프에 대한 심정은 약간 스타워즈 프리퀄에서 자자 빙크스를 보던 것과 다르지 않았는데, 아들내미가 좋아하니까 그냥 어깨를 으쓱할 밖에.

한편, 책도 한동안 원숭이 열 마리 책만 자꾸 읽어달라 하더니 한동안은 스타워즈 ABC와 123 책을 반복해서 읽어달라고 하다가 어제 드디어 다른 책으로 넘어갔다. 뭔가 하나에 꽂히면 그걸 들입다 파는 내 성격을 닮았나...

날씨가 괜찮은 날이 많아져서 종종 밖에 나간다. 그런데 문제는 유모차나 트라이크 타는 것도 거부하고 자기가 직접 걷는 것도 거부하고 내 팔에 안겨서 가려 한다는 것. 월요일엔 평소보다 조금 먼 놀이터에 다녀왔는데 허리가 아프더라. 어휴.

그런데 그 놀이터 간 보람이 있었던 게, 처음엔 우리 둘만 있었는데 좀 있다가 여자 어른 둘(할머니와 aunty)이 애들 대여섯 명을 데리고 왔는데 그중 가장 어린 남자아이(울 아들내미보다 두 살쯤 더 먹은 듯한?)가 우리 아들내미한테 공을 건네며 같이 놀아준 것이다! 지금까지 다른 아이들과 한 공간에서  각자 따로 노는 패러렐 플레이 위주였던 아들내미가 처음으로 (저번에 친구 딸 왔을 때는 자기집, 자기 장난감이었으니까 논외로 치고) 다른 아이랑 상호작용하면서 놀았다! 뭐, 그냥 그 아이가 시키는 대로 공을 들고 굴리거나 쫓는 게 전부였지만 그래도.

또 그 시간에 그 놀이터에 가면 그 아이를 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기는 하는데, 거긴 너무 멀어서 허리가 아프니 과연 또 언제 갈지는 모르겠다. 월요일엔 네이처 센터가 문을 안 열어서 그리로 갔던 건데.



암튼 그래서 화요일엔 아들내미를 차에 태우고 공도 하나 가지고 네이처 센터에 갔다. 놀이방에 자기 또래의 다른 아이가 있었지만 서로 본체만체 각자 따로 놀았다. ...그 놀이터에서의 아이처럼 먼저 다가와 아들내미에게 이래라저래라 시키는 경우에만 같이 놀으려나...

한편, 우리는 퀘스트사에서 나온 저탄수 쿠키를 사놓고 간식으로 먹는데, 아들내미가 자꾸 달라고 하고는 정작 주면 두 세 입 먹고 만다. 이거 쿠키 하나에 2불이나 하는 (아마존에서 구독하면 좀 더 싸지만) 비싼 건데. 직접 저탄수 쿠키를 굽고 싶지만 요즘 너무 바빠서 엄두를 못 내고 있기에, 결국 아들내미용으로 한입사이즈 일반 쿠키를 샀다. 다행히 먹는다.

도서관에 가서도 여전히 가만 있지 않고 나한테 딱 달라붙어서는 칭얼대고 소란 떨어서 민망하다. 이젠 기차나 블록 가지고 노는 것도 좀 시들하고, 방석 있는 곳에 가서 눕기를 좋아한다.



참, 지난 금요일에 한국말이 늘었다는 10개월 형아네 집에 놀러갔었는데, 둘이 서로 말도 안 하고 같이 놀지도 않았다. 둘이 좀 얼른 커서 서로 친구가 되어주면 좋을 텐데.

밖에서뿐만 아니라 집에서도 툭하면 나보고 안아달라고 하는 통에 내가 많이 힘들다. 설거지거리가 싱크에 잔뜩 쌓이고 빨래거리가 손님방에 잔뜩 쌓이는데, 아들내미 어르기 바빠 전혀 손도 못 댄다. 결국 남편이 밤에 자기 전에 간신히 하고 있다. 7월에 시부모님 오시니 그 때는 손님방을 비워야 하는데.

아래층에서 바퀴벌레도 봤다. 딱 한 번뿐이지만 아마도 더 있겠지. 아들내미가 음식을 여기저기 흘리고 다니니 것도 다 바로바로 치우지 못하고. 남편이 덫을 놓겠다고 한다.

임신 시절부터 식탁에서 나는 의자 대신 짐볼을 사용했는데, 이젠 아들내미가 너무 무겁다 보니까 짐볼에 앉아서 감당할 수가 없어 드디어 다시 의자로 갈아탔다. 아이고 이 똥장군.

바이타믹스로 아이스크림을 종종 만들어먹는데, 딸기에 크림치즈 넣어 만들면 약간 치즈케이크 같은 맛이 난다. 그걸 하루는 퍼먹으며 아들내미에게도 먹여줬더니 감질났는지 내 숟가락을 뺏어서 자기가 스스로 퍼먹더라. 숟가락질이 많이 익숙해졌다.
일요일에 미트볼과 비엔나 소시지 오븐에 굽고 바베큐 소스 버무려 모임에 가져갔다가 남은 걸 주중에 먹였는데, 포크질도 제법 잘한다. 미트볼보다는 소시지를 더 좋아하는 것 닽다.

요즘 우리 식구 셋이 다 목감기가 왔는지 기침을 많이 해서 내가 Throatcoat 차에 꿀을 탔는데, 마시지는 않았지만 내가 숟가락으로 떠먹는 걸 보고는 자기도 자기 숟가락을 차에 담갔다가 빨아먹더라. 조금이라도 먹으면 도움이 되겠지...?

아무튼. 그저 매일매일 간신히 버틴다. 귀엽지만 무섭다.

덧글

  • 모자란듯한 정수기 물 2019/04/19 13:34 # 답글

    아들 카리스마가 장난아니네요.. 아들이 아마 커서 효도할꺼 같아요ㅋㅋ;
  • Semilla 2019/04/21 05:31 #

    감사합니다. 그 효도 지금 했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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