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원 다녀오다 아들내미



지난 토요일, 남편의 직장에서 직원들에게 가족 데리고 동물원 나들이하라고 표도 주고 점심도 줬다. 일기예보에 비 온다고 하여 걱정했는데 다행히 우리가 갔을 땐 안 오고 구름이 낀 덕분에 햇볕이 그리 따갑지 않았다. 그래도 나중에 가선 너무 후텁지근했지만.

아들내미는 아침도 먹는둥마는둥 해서 출발도 늦었고, 가는 길이 공사로 막혀서 돌아돌아 가느라 도착이 더 늦었다. 열 시 반쯤 입장해서 일단 북극곰 보고, 점심 주는 장소가 어딘지 확인하러 갔다가 이미 제공하는 걸 보고 그냥 눌러앉아 점심부터 먹었다. 햄버거와 감자칩, 쿠키, 콜슬로 등이 있었다. 우린 빵 없이 햄버거 속재료를 상추에 싸먹었다. 아들내미한테도 패티 하나를 잘라줬는데, 별 관심 없어했고 치즈, 쿠키, 감자칩을 더 먹었다.

기존에 알던 남편의 동료들은 별로 못 봤고, 대신 다른 동료들과 앉아 인사하거나 얘기를 주고받았다. 아들내미보다 반 년 일찍 태어난 아들과 이제 2개월 된 딸이 있고 얼마 전에 우리 동네 옆동네로 이사한 집과도 인사했다. 그집 아들이랑 우리 아들이랑 자연스럽게 다가가서 잠깐 어울리기도 했다. 앞으로 친해지면 좋겠다.

밥 먹고 나서 아들내미 유모차에 태우고 이리저리 둘러봤다. 펭귄이 있는 곳은 시원해서 그런지 사람들이 매우 많았다. 해피피트 볼 때 그렇게 좋아하던 아들내미는 정작 펭귄에는 그닥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대신 해파리가 잔뜩 떠다니는 곳을 보고는 비눗방울이라 생각했는지 bubble!이라고 하면서 좋아하더라.



염소보다는 사료 나오는 통에 더 관심을 보였다. 뭘 작동시키는 걸 좋아하니 아들내미 답기는 하다.

그래도 새나 원숭이 정도는 알아보고 어느 정도 관심을 표하더라. 이날의 하이라이트는 호랑이를 본 거였는데두 마리 중 한 마리는 물에 몸을 담그고 꼼짝을 안 했고. 다른 한 마리는 우리 안을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날도 더워지고, 아들내미의 인내심도 떨어져 가면서, 아무래도 동물원을 다 보는 건 무리니까 그냥 사자만 보고 가자고 정했다. 문제는 사자가 입구에서 가장 먼 곳에 있었다는 것이다. 중간에 젤리로 뇌물을 줘가며 달래서 힘들게 거기까지 갔는데... 사자도 더워서 어디 숨었는지 털 하나 보이지 않았다. 가는 길에 있던 치타도 보이지 않았고, 겨우 우리 구석에 숨어있던 카라칼 한 마리만 봤다.

그래도 모처럼 나들이를 나왔으니 가족 사진도 한 장 찍고



지나갈 때마다 아들내미가 관심을 보여서 회전목마도 탔다. 아직 목마는 무서워서 벤치에 앉았지만. 작년 가을에 시아버지랑 탔을 때 내내 울던 거에 비하면 장족의 발전이다.



그렇게 첫 (사파리가 아닌) 동물원 나들이를 마쳤다. 언제 토피카 동물원에도 데려가야지. 거긴 규모가 작아서 어린애 데리고 다니기 더 좋다던데.


그저께도 도서관에 데려갔는데 역시나 가만 있지 않아서 결국 몇 분만에 나왔다. 이번 일요일이 두 번째 돌이니 이제 베이비 스토리 타임은 그게 마지막이었다. 어제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토들러 스토리 타임에 데려갔는데 역시 나가려고 애를 썼지만 이번에는 그냥 안에서 버텼다.

잘 보니까 아들내미처럼 나가겠다고 떼를 쓰는 애들(다 남자)이 있더라고. 전에 베이비 스토리 타임에서 보이다가 안 보이던 아이도 있었고 교회 유아부에서 본 아이도 있었다.

이번 진행자는 남자였다. 원래 진행자가 휴가 가서 대타라는데 원래부터도 애들을 잘 다루는지 솜씨가 괜찮았다. 처음에 종을 들고 애들에게 울리게 했는데, 그게 재미있어서 애들도 집중하더라. 비록 우리 아들은 첫 노래 시작부터 관심이 뚝 떨어졌지만. 심지어 읽어주는 책 중에는 고양이가 나오는 것도 있었는데!

결국 교회 친구랑 둘이 나란히 문으로 가서 밀고 내보내달라고 소리 지르고 그러더라.

그러다 마지막에 원숭이 퍼펫을 손으로 조종하니까 아들내미가 다시 관심을 보였다. 끝날 때 이름표를 원숭이에게 반납하고 하이파이브하면서 마무리했는데, 참을성 있게 자기 이름표 들고 잘 기다려서 원숭이에게 이름표 주고 손도 맞추더라.

끝난 후 역시 블록과 기차 장난감 가지고 놀았는데, 그러다 저번에 악어 인형 가지고 놀았던 공간에 이번엔 커다란 곰 인형 두 개가 있었고 또래 남자아이들 둘이 놀고 있었는데 자기도 무턱대고 끼어들어서 약간 서로 어울려 놀았달까...? 그냥 같은 공간에서 뛰어다니면서 웃고 인형을 흔드는 정도였지만, 숫기 없던 아들내미가 이제 조금 다른 아이들에게 다가가는 것 같아서 기뻤다.

바이타믹스로 만든 스무디를 좋아해서 이젠 먹고 싶으면 부엌에서 바이타믹스에 손을 댄다. 미리 많이 만들어서 한 번에 먹을 분량씩 얼려 놓았다가 전자렌지에 십 초 돌이면 숟가락으로 퍼먹일 수 있다. 크림치즈와 딸기와 우유를 섞어 만드는데, 약간 치즈케익 같은 맛이 나서 좋다.

토요일에 있는 생일파티에서 손님 선물에 넣으려고 고소미 등 한국 과자를 좀 샀는데, 백에 어떻게 들어가나 보려고 겉포장을 뜯어놨더니 그게 먹는 건줄 어떻게 알고 고소미 한 봉지를 들고 나한테 오는데, 이게 맛있다는 걸 아는 듯이 아주 득의양양한 표정이었다. 뜯어주니까 정말 잘 먹더라.

라면도 먹여봤는데, 삼양라면이고 스프도 반만 넣고 했는데도 매웠는지 켁캑거리면서도 또 맛있었는지 자꾸 달라고 하더라. 이건 일단 보류.

참, 도서관에서 아들내미가 출출해할 때 크래커를 줬더니 또래의 어떤 여자애가 다가오길래 나는 같이 먹어도 된다고 했지만 아이 아빠가 안 된다고 했는데 결국 여자아이가 잽싸게 크래커 하나를 집어서 아빠가 막기 전에 입에 넣었다. 아빠가 미안해하면서 대신 야채와 과일을 말린 간식을 주겠다고 했는데, 나는 호기심이 생겼지만 일단은 아들내미가 안 먹을 것을 알기에 거절했다. 그런데 앞으로 그런 옵션을 좀 찾아볼까 한다.

다음 주에 오클라호마로 여행 가기 때문에 차의 브레이크 패드를 갈러 갔다 왔다. 혼다 딜러십에서 기다리는 동안 노트북을 가져가서 아들내미는 거기 장난감 가지고 놀고 나는 일을 하려 했는데...  몇 줄 못 쓰고 그냥 아들내미에게 TT 뮤직비디오나 틀어주고 말았다. 이무튼 거기 손님을 위한 음료랑 간식거리가 있었는데, 귀리와 땅콩버터와 초코칩이 든 바를 한 번 줘봤더니 잘 먹더라. 자꾸 달라고 해서 두 개 반이나 먹었다. 좀 미안하기도 했는데, 거기서 세 시간 반이나 기다렸는데다 다 되고 나서도 나한테 알려주지 않아 내가 차가 주차된 걸 보고 물어보니까 그때서야 처리해줘서 집에 갈 수 있었기 때문에 뭐...

요즘은 생선 스틱도 잘 잘라주면 잘 먹는다. 며칠 전에는 모처럼 한인가게에서 산 얇게 자른 갈비살을 상 위에 그리들 놓고 구워먹었는데, 처음엔 거부하다가 쌈장 묻혀 주니까 잘 먹었다. 김치도 아주 쪼그만 조각이랑 같이 줬는데 뱉지 않고 먹었다. 연습용 젓가락도 조금 사용했다.


한편, 우리가 하는 말을 따라하는 게 부쩍 늘었다. 주로 마지막 음절을 따라한다. 그걸 들으니 새삼, 작업 기억의 용량이 작다는 게 실감되더라. 해상도가 매우 낮아서 투박한 거다. 그래서 자음이 여러 개 겹치는 것도 발음 못 하고, 음절이 긴 단어도 발음 못 한다. Butterfly는 fly, dinosaur는 saur 하는 식으로 끝부분만 말하기도 한다.

공부 안 한지 오래돼서 이게 언어 학습에 어떻게 작용하는지 지금 당장은 체계적으로 생각해보지 못하겠지만, 일단 지금은 chunking을 위한 경험치 쌓기가 중요하구나 싶다. 그리고, 굳이 지금부터 한국어를 가르칠 필요는 없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든다. 작업 기억 용량이 좀 더 커지면 그때 본격적으로 배우는 게 더 효율적이지 않을까.
어차피 조기 교육의 이점은 소리 구분인데, 그건 내 경우를 보면 대여섯 살 때 배워도 상관없는 것 같고.
어차피 초반에 여러 언어를 배우느라 각 언어의 진행이 느리더라도 결국엔 따라잡는다는 건 알고 있지만, 반대로 지금 나랑 말이 안 통해서 답답한데 한 언어로라도 소통을 먼저 뚫은 다음에 다른 언어를 배워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내 아들이지만 남편의 아들이기도 하니까 나와는 다른 결과가 나올 수도 있겠지만, 뭐 그렇더라도 상관은 없다. 한국어든 스페인어든 어차피 본인이 원해야 배우는 거다. 내가 지금 조바심내봤자 소용없다.

뭐 일단 잠정적으로 아렇게 생각은 해도, 지금 혼자 볼 땐 영어랑 한국어를 같이 말하고 있다. 근데 어차피 다음 달에 시부모님 오시면 영어 위주로 생활하게 되니까.

사실 한국어 배우는 데 있어서 가장 큰 장벽은 이걸 실제로 쓰는 상황이 없다는 것이다. 앞으로 한국인 친구를 만나기도 하겠지만 한계가 있고. 결국 나처럼 덕질하면서 스스로 파게 만들려면 어차피 한참 기다려야 하니까.

결국엔 그냥 내가 딱히 한국어를 가르치지 않는 것에 대한 핑계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내일은 생일파티다. 좋은 시간이 되기를.


덧글

  • 밥과술 2019/06/29 18:01 # 답글

    무럭무럭 크는군요. 보기에 좋습니다.

    해피버스데이! 입니다.
    여행도 잘 다녀오시기 바랍니다
  • Semilla 2019/06/30 12:16 #

    감사합니다! 오늘 잔치 치르고 녹초가 되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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