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곰 가족

H가족과 R가족에게 딸이 태어났을 때가 내가 (내 동생 이래) 처음으로 가까이서 아기가 자라는 것을 지켜보는 경험이었다. 그때가 내가 한창 학교 다니면서 우울증에 시달리던 시기라서 그런지, 사랑받으면서 그 사랑을 당연하게 여기고 당당하게 자라나는 H와 L을 보면서, 어떻게 저럴 수 있을까 생각하며 나는 더 우울해했다. 나는 저렇지 않았을 것 같아서 더 서러워진 거라고 할 수 있겠다. 피해망상이 불필요하게 발달한 나인지라.

지금도 비슷한 것 같다. 나를 믿고 의지하는, 날 볼 때마다 환호성을 지르며 기뻐하고 달려와 껴안아주는 아들내미를 보면, 왜 나 같은 걸 저리 좋아하나 하는, 자격 없다는 죄책감 같은 느낌에 마음이 불편해진다. 그리고 나도 어렸을 때 내 엄마 아빠에게 밸없이 저렇게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면 속도 쓰리다.

내가, 나도 어렸을 때 우리 아들내미처럼 내 부모에게 그랬을까 말로 궁금해 하니까, 남편은 나도 부모님 속을 썩였을까 걱정하는 거냐고 물었다. 음, 일단 자식이 부모 속 썩이는 거야 당연한 것이고, 아들내미도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은 맞지만, 내 생각은 거기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반응이 나온 게 신기했다. 그래. 일반적으로는 그게 당연한 생각의 수순인가보다. 내 새끼 기르는 게 이리 힘드니 날 기르신 부모님의 수고를 생각하며 감사하는 것.

그런데 나는 전혀 그런 마음이 들지 않는다. 인간적으로 연민은 든다. 어렴풋이 동생이 카펫 위에 똥을 싸고 그걸 내가 재밌다고 깔깔거리며 웃었던 날의 기억이 있다. 그날 엄마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물리적으로 두 남매 키우는 게 힘들었을 거라는 건 머리로 이해한다.

하지만 내가 일부러 엄마를 힘들게 하려고 한 게 아닌데 미안한 마음은 들지 않는다. 오히려 내가 조그마한 실수할 때마다 엄마 힘들게 하려고 일부러 그런 못된 년이라는 욕을 먹으며 지금 내 기준에서 생각하면 과하게 혼났던 기억 때문에 더 반발심만 가득하다. 그래. 엄마가 처한 현실이 워낙 시궁창이라서 그렇게라도 나한테 감정을 표출했던 것. 이해는 간다. 하지만 그거 받아내느라 난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못된 아이라고 세뇌되었던 나는 지금 와선 분노할 뿐이다.

동생이 결혼한다니까 그 상처가 다시 곪는 모양이다. 그 가정에 정말 필요했던 자식은 내 동생뿐이라는. 지금의 나는 친정과 거의 교류가 없는 상황이고, 나로서도 없는 자식으로 쳐주면 감사한데도, 이렇게 내가 (마땅히) 배제되는 상황이 닥치니까 괜히 더 기분이 비참해지는 그런.

차라리 정말로 아무런 교류가 없었으면 생각나지도 않으니까 나을 텐데. 카톡을 하니 문제다.

생각하지 말자. 그냥 내 새끼 끼고 행복하게 살면 그만이다. 엄마 아빠가 여생을 어디서 어떻게 보내시건 난 상관 안 하면 된다. 아들 내외가 잘 모시겠지. 폭탄 돌리기한 느낌도 있어 미안하긴 하지만 동생은 그만큼 경제적인 원조를 받고 있잖아.

불행한 결혼 생활을 시작하자마자 덜컥 들어선 반갑지 않은 자식이었던 나에 대한 내 엄마의 취급이

나름 행복한 결혼 생활을 10년 넘게 하다가 계획해서 귀하게 맞이한 자식인 내 아들내미를 대하는 나의 태도와 다른 건 당연한 거야.

나는 내가 피해자라고 생각하지만, 엄마 입장에선 가해자 중의 하나니까. 이제 그만 억울해 하자. 그냥 신경 쓰지 마. 아들내미 이쁜 짓 하는 거 볼 시간도 부족해.

덧글

  • 2019/11/06 17:11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9/11/07 13:33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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