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개월 아들내미

어제는 참 바쁜 날이었다.
일단 아침에 음악 교실에 갔다. 아이들이 여덟, 어른이 여섯 명 정도 되었나. 아들내미는 중간에 지루했는지 문고리를 잡고 매달렸는데, 선생님이 잘 달랬다. 춤 출 때는 내 손을 잡고 한 방향으로만 계속 돌아서 어지러웠다.
아들내미보다 한 달 먼저 태어난 남자아이가 있어서 그 엄마가 이것저것 묻더라. 그런데 나는 빨리 오픈 짐으로 가야 해서 대충 대답하고 그 자리를 떴다. 무례하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겠지.
오픈 짐에서 아들내미보다 두 달 어린 한국인 여자아이와 그 엄마를 만났다. 아들내미가 은근히 그 애를 따라다니더라. 혼자 놀다가도 여자아이가 다른 기구로 가면 where’s [여자아이 이름]? 하면서 두리번거리다가 찾으면 곧장 그리로 다가갔다. 근데 막상 가면 또 같이 노는 건 아니고 그 주변에서 놀아요.




지난 주 금요일에는 아예 이 집에 놀러가서 점심(짜파게티) 먹고 놀이터에 갔는데, 얘가 혼자서 미끄럼틀 타는 거 보고 아들내미도 낮은 미끄럼틀은 얘 따라서 혼자 타더라. 높은 미끄럼틀은 여전히 무섭다고 꼭 나랑 같이 탔지만.
그때 17개월이라는 다른 남자아이도 놀이터에 왔는데, 걔는 겁이 하나도 없더라.




아무튼 그렇게 오픈 짐에서 놀다가 집에 돌아와 점심 먹고 다시 나가서 30개월 검진 받으러 갔다. 매번 ASQ 발달 설문지를 미리 작성해갔는데 이번에는 까맣게 잊고 있었다. 접수하면서 받아서 부랴부랴 작성했다. 마침 27개월짜리를 데이케어에서 했었는지라 문항이 겹치는 것도 있고 해서 수월하게 작성할 수 있긴 했다. 대부분 한다에 체크했는데 아직인 문항은 옷을 스스로 입을 수 있느냐는 것. 일단 옷 입는 것 자체를 싫어해서...

키는 37.5인치로 백분위 75%. 몸무게는 30.8파운드로 백분위 60%. 머리둘레는 그러고 보니 얘기 안 해줬네.
간 김에 독감 예방주사를 맞았는데, 전혀 울지 않았다. 간호사가 솜씨 좋게 번개처럼 놔준 덕분이겠지.

집에 가는 길에 애완동물샵에 들렀다. 종종 햄스터 보고 싶다, 토끼 보고 싶다, 거북이 보고 싶다면서 가자고 졸라서. 요즘은 불가사리에 꽂혀서 결국에는 불가사리 모형을 샀다. 내심 비싸서 내키지 않았는데, 애가 너무 좋아해서. 아 나는 왜 이렇게 무른가.

거기 하고 많은 어항? 수족관? 중에 불가사리가 있는 건 딱 한 개인데, 매번 가면 다른 위치에 숨어 있더라. 그걸 아들내미는 꼭 확인한다.
형광색 열대어가 있는 어항 안에 형광 연두색 물고기 모형이 있는데, 그것도 아들내미는 좋아한다.

...그리고 집에 와서 열심히 불가사리 모형을 가지고 놀던 아들내미는, 이제 그 그린 피쉬를 사달라고 떼를 쓰기 시작했다. 즉, 다시 펫샵에 가서 (back, pet store) 그 물고기 달라고 (get green fish).

오늘 아침, 드디어 다시 데이케어 가는 첫날이었는데, 아들내미는 펫샵에 가자면서 집을 나섰고, 펫샵에 아닌 데이케어 주차장에 서자 짜증을 부렸다. 그래도 울지는 않고 잘 들여보냈다.
결국 데이케어 끝나고 집에 가는 길에 펫샵에 들러서 그 형광 물고기 모형도 샀다. 나 정말 무르다니까.

사실 아들내미가 요즘 사달라고 조르는 것에는 슈퍼윙스의 Grand Albert (다알지 할아버지) 장난감도 있는데, 다른 애들은 대부분 적당한 가격에 파는데 이것만 미국에 없어서 더 비싸게 다른 나라에서 주문하는 옵션밖에 없더라. 작은 피규어는 다른 애들이랑 세트로 사는 옵션이 있는데 이미 있는 애들이랑 겹쳐서 사고 싶지 않고. 따로 사는 건 비싸고.
한국에 가서 보이면 사오지 뭐 하는 생각이다. 그때도 아직 슈퍼윙스 좋아하면 말이다.

내일은 도서관에 간다. 저번에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은 엄마 호랑이와 아기 호랑이가 나오는 거였는데, 남편이 읽어줄 때 아기 호랑이 그림을 보고 아들내미가 [자기 이름] 타이거라고 말했다는 얘기 듣고 너무 귀여웠다. 어쩜 이렇게 사랑스럽지?

그나저나, 이번 연휴에 배변 훈련 시작해볼까 생각했었는데 그냥 시기상조라 생각되어 포기하고 말았다. 속옷을 입히고 쉬야나 응가하고 싶으면 말하라고 했는데 전혀 말하지 않고 둘 다 싸버려서. 그나마 치우기 쉽게 싸서 다행이었지만.

천천히 potty에 앉히는 것부터 시작해야겠지만 일단 타이밍을 못 맞추니 지금은 의미가 없는 듯.

이젠 자기 사진 보면 자기 이름을 제대로 발음한다. 내가 카메라 들이대면 싫어하지만, 가끔은 내 품에 안겨서 셀카 찍자고 자기가 먼저 카메라를 요구하기도 한다.



빼빼로를 줘봤더니 잘 먹는다. 내가 못 먹는 것을 얘 먹여서 대리 만족하고 있다. 사진의 조끼는 한국에서 이모가 선물로 보내준 것이다. 조끼값보다 배송비가 더 나온 거 아닐까...

내가 엄마 노릇할 자격이 없다는 생각이 종종 든다. 하지만 어쩔 수 없지. 도망갈 수도 없고. Spine을 길러야 하는데 지금 난 연체동물이야.
애 성격 망치고 싶지 않은데. 이렇게 제멋대로 자라게 둬서는 안될 텐데.

왜 나는 이렇게 무른가.



덧글

  • 보리 2020/01/10 17:28 # 답글

    사진속의 아이가 저렇게 밝은 걸 보면 든든한 엄마가 잘 하고 있는 게 분명해요. 너무 걱정 마세요~
  • Semilla 2020/01/14 00:36 #

    감사합니다. 보리 님도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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